로마 가톨릭의 루터 파문
상태바
로마 가톨릭의 루터 파문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8.06.14 0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 루터와 독일의 종교개혁(6)

1519년 라이프치히 신학 논쟁 이후로 이 논쟁을 주도했던 에크는 로마로 돌아가서 교황청 법원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 루터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인해 어려움이 좀 있었으나 1520년 6월 15일 마침내 출교교서는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루터가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글과 때를 맞추어서 출교교서가 완성된 셈입니다. 교황 레오 10세(1475-1521)는 1520년 6월 15일 ‘주여 다시 일어나소서’라는 교서를 발표하고, 루터의 논제에 41가지의 오류가 있다고 반박하며, 루터의 주장을 철회하지 아니하면 파문하겠다고 하는 파문 위협 칙령을 내렸습니다. 교황청 출교 교서는 시편 74:22을 인용하면서 작성 되었습니다. “오 주여 일어나서 당신의 입장을 밝히소서. 야생의 산돼지가 당신의 포도나무를 침범했나이다 … 모든 성자들과 우주적 교회여! 일어나소서. 당신들의 성경해석이 침해받았나이다.” 

이 칙령이 루터에게 도착한 날짜는 1520년 10월 10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유예기간으로 주어진 60일이 경과하는 마지막 날인 1520년 12월 10일, 루터는 비텐베르크 학생들에게 교황청의 헌장과 스콜라 신학서적 등을 공개적으로 소각시킬 예정이므로 증인으로 참여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1520년 12월10일 아침 9시에 루터는 비텐베르크에 있는 ‘엘스터 케이트’에서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회법과 교황의 출교 교서를 공개적으로 불태움으로서 교황청과 결별을 선언 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교황청 법령의 장례노래를 부르기도 하였고 교황청을 조소하면서 함께 스콜라 서적과 교황청 서적들을 화염 속에 던졌습니다. 이날 이후로 루터는 확고한 신념으로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교황은 적그리스도의 상징이며, 가장 악마적인 존재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도 못된 이듬해인 1521년 1월 3일에 로마 교황 레오 10세는 또 다른 교서인 ‘상응하는 로마 교황청’을 발표하여 루터를 파문시켰고, 1월 21일에는 루터를 이단으로 정죄할 뿐 아니라 교회로부터 영원히 제외되는 출교 처분을 내렸습니다. 당시의 유럽은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문은 곧 사형 선고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또한 출교는 정부로부터 신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의 박탈을 의미하였으므로 누구든지 원하면 루터의 생명을 자유롭게 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서울 대학로에서 뮤지컬 ‘마르틴 루터’가 공연되었습니다. 뮤지컬의 마지막 부분에서 루터는 친구이자 동료 사제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게나, 난 자네 기도가 참 좋네.” 파문당해 이단이 되는 순간 벌어질 끔찍한 일들을 앞두고 괴로워하는 루터의 모습은 대의와 자신의 안위가 충돌 할 때 고뇌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기가 누리는 안정된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데도 불구하고 불의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 싸움이 자신의 안전까지도 위협하는데도 물러서지 않을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거대한 불의의 조직 앞에 너무나 초라하고 연약한 인간이 맞선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루터가 지내던 비텐베르크의 집에는 이렇게 한 줄의 글이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곳에 그리스도가 계시도다.”

평안교회 담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