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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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8.06.05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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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독일의 종교개혁(5)

(1) 하이델베르크 논쟁
최초의 논쟁은 1518년 4월 26일에 있었던 하이델베르크 논쟁입니다. 이 논쟁의 중심주제는 로마가톨릭이 주장하는 ‘영광의 신학’과 루터가 주장한 ‘십자가 신학’이었습니다. ‘영광의 신학’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펠라기안주의에 근거하고 있어 구원은 하나님과 사람의 협력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사람의 본성적 영광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선한 일을 하려는 인간의 열망만 조금 부추기면 된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루터는 ‘십자가의 신학’을 강조했습니다. 십자가 신학이란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가까이 가면 일그러진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입니다. 내가 어떠한 고통을 당할 때 십자가를 바라보고 이길 수 있는데 이 비밀이 십자가 신학입니다. 현재에는 너무나 답답하고 안보이고 캄캄하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이길 수 있습니다. 

(2) 아우구스부르크 논쟁
1518년 10월 루터는 독일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추기경 카예탄으로부터 심문을 받았습니다. 교황청은 루터의 재판을 이단문제 소송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로 보았습니다. 카예탄은 면죄증에 대한 루터의 비판을 이해했지만 교황권에 대한 견해에는 강한 반발로서 거부했습니다. 카예탄은 교황의 무오성을 강력히 주장했고 루터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했습니다. 

루터는 프레더릭이 보낸 두 명의 변호사와 함께 로마교황이 오류를 범할 수 있고 범하고 있으며, 범 종교회의가 교황보다 우위에 있고, 이신칭의 교리는 성경에서 명백히 가르치는 진리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제출했습니다. 카예탄이 그 성명서를 로마교황에게 보낼 것이라고 동의했지만 그 내용을 읽어보고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루터에게 다시는 자신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우구스부르크 심문을 받은 직후 교황에게 교회의 공의회 앞에서 재판을 호소했습니다. 

(3) 라이프치히 논쟁
1519년 7월 4일에서 14일까지 열린 라이프치히 논쟁은 성경 본문이 교회의 권위보다 우선된다고 주장하자, 에크가 공개 토론을 제안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논쟁 주제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교황의 권위에 관한 것입니다. 에크는 교황의 권위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하였지만, 루터는 교황의 권위가 인간의 전통에 근거한 것이며 교황도 인간이기 때문에 많은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둘째로, 연옥에 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에크는 연옥이 마카비2서 12장45절에 나오므로 연옥 교리가 성경적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루터는 마카비서가 외경일 뿐 성경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로, 면죄증과 고해 성사가 다루어졌습니다. 에크는 면죄증과 고해 성사가 교회 전통에 근거한 것이므로 교회가 따를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루터는 교회의 전통이 인간의 고안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잘못될 수 있고, 오직 성경만이 오류가 없으므로 면죄증과 고해 성사는 성경의 교훈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평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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