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의 쿠데타, 1번의 내전도 선교열정 꺾을 순 없었죠"

코트디부아르 아비장한인교회, 백성철 선교사 한현구 기자l승인2018.05.29 16:45:33l수정2018.05.29 16:47l14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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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않던 아프리카, 부르심에 고민 않고 떠나

“전 교인이 선교사” 열매맺는 디아스포라 교회 모델

▲ 22년재 코트디부아에서 선교하고 있는 백성철, 오길순 선교사 부부는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교사라고 고백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교사를 꼽으라면 아마 제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겁니다.”

이름도 생소했던 코트디부아르에 발을 디딘지 22년 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네 번의 쿠데타와 한 번의 내전을 겪어야 했다. 총소리가 빗발치면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엄두를 못 냈다. 불안감에 성도들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의지했던 동료 선교사들마저 떠났다. 이쯤 되면 아프리카에 진절머리가 날 법도 한데, 백성철 선교사는 미소를 가득 품은 얼굴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교사’라고 고백한다.

백 선교사가 목회하는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의 아비장한인교회는 성공적인 한인교회의 모델로 소개해도 손색이 없다. 약 250여 명의 코트디부아르 한인 교민 중 교회에 출석하는 교민이 100명이 넘는다. 코트디부아르 교민의 절반에 가까운 수가 크리스천인 셈이다.

해외 한인교회에는 신앙이 없는데도 한인 커뮤니티가 필요해 교회를 찾는 교민들이 종종 있다. 그래서 선교와 영적 성숙에 매진하기보다는 그들을 위로하는데 집중하며 조금은 더딘 걸음을 걷는 교회들이 많다. 하지만 아비장한인교회는 성도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선교에 나선다. 교회 재정 중 7~80%를 선교비로 쓰면서 개척한 현지교회만도 26곳에 이른다. 백 선교사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유다.

늦깎이 선교사, 아프리카로 가다

출발은 조금 느렸다. 백성철 선교사는 무역회사에 근무하던 평범한 10년차 직장인이었다. 생활에는 부족함이 없었고 교회에서는 누가 봐도 믿음 좋은 집사였다. 오지로 훌쩍 떠나는 것은 그의 인생계획표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번의 집회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1989년이었어요. 집사로 시무하던 새문안교회에 홍정길 목사님이 강사로 오셔서 집회를 인도하셨죠. 그 전까진 우리 교회에서 선교를 주제로 다룬 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홍 목사님이 선교를 강조하시면서 선교사로 헌신할 사람은 주저 말고 일어나라고 하시더군요.”

평소 소심한 성격의 그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마음에 강하게 주시는 감동에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때 백 선교사는 2층에, 아내 오길순 사모는 1층에 있었다. 집회가 끝나고 얘기하니 상의도 하지 않았는데 아내도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아닌가. 서로를 볼 수 없는 위치였지만 부어주신 마음은 같았다.

강력한 부르심을 모른 채 할 수는 없었다. 그 길로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미국으로 신학공부를 떠났다. 영어도, 신학도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사명을 생각하며 땀을 흘렸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을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아비장한인교회 담임 목사로 와 줄 수 없겠느냐는 연락이었다.

당시 아비장한인교회는 1대, 2대 목사가 교회 내부 갈등으로 떠나고 목회자 자리가 비어 있었다. 목회자를 청빙하러 미국까지 왔던 집사는 ‘누가 정신 나갔다고 아프리카를 가겠느냐’는 반응만 연달아 접하며 실망하고 있던 차였다. 기대를 버리고 마지막으로 만났던 백성철 선교사 부부는 그 자리에서 두 말 않고 코트디부아르로 가겠다고 답했다.

“선교사로 보내주시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고 기도했기에 고민은 없었습니다. 사실 코트디부아르가 프랑스어를 쓰는 것도 모르고 갔어요. 이제야 농담 삼아 하는 말이지만 프랑스어를 쓰는 줄 알았다면 조금 고민했을지도 몰라요. 미국에서 공부하느라 영어를 새로 배웠는데 프랑스어까지 배우긴 벅찬 나이였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몰랐던 것까지도 은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것 같아요.”

고난의 산을 지나며 경험한 은혜

오로지 사명만 붙들고 도착한 코트디부아르에는 넘어야 할 벽이 산더미였다. 프랑스어만으로도 눈앞이 깜깜한데 교회의 내부 갈등마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교회 역사가 16년이나 됐지만 창립 연월일조차 제대로 기념하지 못하고 있었고 외부 선교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태였다.

백 선교사의 유일한 해결책은 신앙의 기본 중 기본인 말씀이었다. 교인들 한 명 한 명을 모아다 놓고 기초 신앙 교육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말씀을 가르치고 기본을 다진 것이 3년, 교회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말씀을 알고 하나님 믿는 기쁨을 알게 된 성도들의 신앙은 180도 달라졌다. 부임했을 당시 30여 명이었던 성도 수는 이제 100명이 넘도록 부흥했다.

또 하나의 벽은 코트디부아르의 불안한 정치 상황이었다. 1996년 이곳에 도착한 이후 네 번의 쿠데타와 한 번의 내전을 피부로 경험해야 했다. 뼛속까지 시리게 하는 쿠데타의 싸늘한 공기는 직접 겪지 않고는 짐작하기 힘들다. 총성이 울릴 때마다 정치는 혼란해 졌고 경제는 바닥을 쳤다. 적지 않은 수의 한인 성도들도 코트디부아르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은혜는 있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소리 속에서 성도들을 지켜주시면 이곳에서 죽도록 충성하겠노라고 기도했습니다. 불안에 떠는 성도들을 불러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셨듯 하나님이 지키실 것이라고 안심시켰죠. 정말 감사하게도 5번의 유혈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한인 피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한마음으로 교회를 지킨 성도들, 특히 두 장로의 헌신 또한 큰 힘이 됐다. 내전으로 자녀 교육이 어려우니 이 땅을 떠나는 게 어떻겠냐고 권면하는 백 선교사에게 장로들은 ‘교회가 있고 목사님이 계신데 어떻게 떠날 수 있냐’고 답했다. 그 후 하나님이 두 장로에게 놀라운 물질의 복을 부어주시는 것도 경험했다.

“머니가 변해서 미션이 됐습니다”

내전 이후 아비장한인교회는 놀라운 축복과 성장을 경험했다. 이제는 외부의 도움 없이도 선교하고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거점 교회가 됐다. 이제 아비장한인교회는 아프리카 한인교회의 독자 사역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다양한 선교 사역들을 감당하고 있다.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현지인 교회 개척(Church Planting)이다. 먼저 의료 선교팀이 각 마을을 방문해 전심으로 섬기며 터를 닦는다. 물을 필요로 하는 곳엔 우물을 파고 전기가 닿지 않는 곳엔 전신주를 설치한다.

교회를 세우기 전 친숙해지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 크리스천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책임이라는 생각에서다. 한 번은 마을의 이슬람 지도자인 이맘이 교회를 찾아와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감사를 전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22년 동안 한 번도 코트디부아르를 떠나지 않은 백 선교사의 모습도 주민들을 선교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쿠데타와 내전으로 다른 선교사들이 하나 둘 철수할 때도 교회를 지켰다는 사실이 현지 주민들과 목회자들에게 알려지면서 신뢰를 얻게 된 것이다.

올해까지 아비장한인교회가 세운 현지교회는 26곳에 이른다. 게다가 그 교회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자신들의 부족 속으로 들어가 60여 개의 지교회를 개척했다. 한 알의 밀알이 심겨져 큰 나무를 이루고 제자가 제자를 낳는 사역들이 지금 코트디부아르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인 성도들은 각자의 달란트를 가지고 병원과 학교를 세우는 일에도 헌신했다. 아비장한인교회가 세운 기독소망학교에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기독교 가치관으로 교육받는다. 이디아께장로회사회복지병원은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주민들을 무료로 돕고 있다.

“성도들의 헌신이 없었으면 상상하기 힘들었을 사역들입니다.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왔던 성도들이 이제 넘치는 기쁨과 함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지로 나가고 있어요. ‘머니’가 변해서 ‘미션’이 된 거죠. 아비장한인교회는 전 교인이 선교사라는 마음으로 훈련받고 동역합니다.”

코트디부아르는 대부분이 이슬람 국가인 서부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무슬림 정부가 들어섰고 국민의 약 50%가 무슬림이지만 선교 활동에는 제재가 없다. 이런 환경을 발판 삼아 아비장을 서부 아프리카 선교의 전초기지로 성장시키는 것이 백 선교사와 교회의 비전이다.

“서부 아프리카 경제 공동체인 ECOWAS 15가 있습니다. 대부분 불어를 사용하는 이슬람 국가들이에요. 유일하게 선교가 자유로운 코트디부아르의 한인 교회가 서부 아프리카 복음화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믿습니다. 2009년과 2011년, 니제르와 부르키나파소에 성도들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앞으로 15개국 모두에 선교사를 파송하며 주님 오시는 날까지 사명 감당하는 것이 저와 교회의 꿈입니다.”

한현구 기자  hhg@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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