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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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맨!
  • 이수일 목사
  • 승인 2018.05.2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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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목사/흰돌교회

글로벌은(global)은 ‘세계적인’이란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시대란 경제 활동이나 문화의 교류 따위가 전 세계를 무대로 하여 이루어지는 시대를 말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름하여 ‘지구촌’을 형성하면서 지형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하루 사이에 일어난 일, 심지어 한 두 시간에 일어난 딴 나라의 사건까지 우리는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어느 마을, 어느 가정에서 일어난 일까지 속속들이 꿰차고 있으니 재밌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가끔 지구촌 곳곳을 내 집 안마당처럼 드나드는 사람들이나 혹은 그렇게까지는 아닐지라도 자주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름하여 ‘글로벌맨’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요즘 대기업의 가족들이 보여주는 희한한 행동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그들은 전 세계를 그야말로 내 집 안방처럼 드나드는 사람들이다. 원하기만 하면 멋진 정장에, 비싸고 맛난 음식을 거침없이 먹으며 호화 유람선이나 최고의 비행기좌석에 앉아서 여행을 마음껏 즐기는 사람들이다. 전 세계의 음식과 문화를 섭렵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글로벌의식을 가진 세계화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세계화는 비행기 한 번 타보지 않아도 가능하다. 평생 경운기만 타고 다니면서 농사밖에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도 얼마든지 세계화된 사람들이 많다. 양심적인 사람, 예컨대 농약을 무더기로 살포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면서 양질의 농산물을 생산하려는 사람, 농산물을 적정가격에만 거래하는 사람, 시골에 살지만 전 세계의 평화를 걱정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내가 보기엔 세계화된 사람들이다. 비록 통통배를 타고 다니며 거친 파도와 싸우면서 얼마 안 되는 고기를 팔아 살아가지만 양심적이고 가슴 따뜻한 이들이 세계화된 사람들이다. 비록 서민이란 딱지가 붙여져서 살지만, 주변에 누군가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함께 울고 서로 도울 줄 아는 이런 사람들이 세계화에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지구촌 어딜 갔다 놔도 사람을 귀히 여길 사람들이며 상식에서 벗어나질 않을 사람들이며 필요하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어릴 적 들은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 가난한 어머니와 아들이 살아가는 가정에 지나가는 걸인이 들렀다. 어린 아들이 “엄마, 거지가 왔어요”라고 하자, 어머니는 이내 소찬이지만 따뜻한 밥상을 내오곤 정성스럽게 걸인을 대접했다. 뜻밖의 대접에 당황한 걸인이 미안한 마음에 총총걸음으로 사라지자 어머니가 아들을 타이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얘야! 다음부턴 거지가 왔다고 말하지 말고 ‘어려운 분’이 오셨다고 하렴”

세계화된 의식, 즉 글로벌의식은 지식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 권력에 있지 않고 가슴에 있다. 대형교회에 다닌다고 세계화된 교인도 아니고 수도권에 산다고 저절로 글로벌의식이 가득 차 있는 것도 아니다. 목회를 하면서 느낀 것은 성경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예수님 정신을 자신의 정신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세계화된 사람, 즉 국제신사로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 오늘 이 땅에 이런 사람들이 가득하길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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