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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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나의 아버지!
  • 정석준 목사
  • 승인 2018.05.2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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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 - 55

내 아버지는 동네 ‘꽁생원’이었다. 남들처럼 술 마시고 놀고 노름하는데 어울리지 않으셨던 까닭에 붙여진 별명이다. 농한기가 되어도 출근하듯 하루 종일 논에서 다음 해의 농사를 준비하셨다.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으로서 자리를 잡고, 자식들을 키워내야 할 현실적 감각이 그런 생활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결국 동네에서 부자 소리를 들었고, 평소 아버지를 조롱하던 사람들도 어려울 때엔 손을 벌리고 아버지께 도움을 청해오곤 했다.

어렸을 땐 사실 이런 점이 제일 싫었다. 설령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한량이라도 마을에서 제법 힘도 쓰고 거들먹거리며, 적어도 마을 이장이라도 하는 분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순한 사람” “근면 정직하더니 부자가 된 사람”이란 두 가지 동네 평판은 우리 형제들에게 전해진 위대한 유산이 되었다.

‘말’은 희랍어로 ‘로고스, logos’이다. 히브리어 ‘다발, dabal’에서 유래한다. 동사형은 ‘말하다, dibbar’인데, 그 의미가 ‘사건, event’ ‘말, word’과 놀랍게도, ‘믿음, faith’이란 뜻을 갖고 있다. 유대인의 중요한 관습 중 하나가 ‘언행일체’, 곧 “말한 대로 사는 삶”이다. 결국 믿음이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일반적 이해를 넘어서, 하나님의 주신 말씀을 그대로 준행하면서 사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Faith without deeds is dead.”이라고 했다.

아내와 주렁주렁한 자식들을 책임지고, 살림을 일으켜야한다는 일념으로, 법에 대항하는 일체의 꼼수 없이, 마치 죽은 자 같은 모습으로, 우리아버진 다만 생존현실에 충실했다. 그리고 그 ‘꽁생원’ 아버지 덕분에 지금 우리 팔남매는 참 잘 살고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공산 독재정권유지의 그릇된 세습은 이미 어린 손자가 짊어지기엔 너무 버거워졌다. 핵 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현실을 무시한 평화적 낭만주의이다. 우리끼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겐 없다. 냉정한 국제 정치현실에서 한반도를 바라봐야 한다. 정말 엎드려 기도해야할 분명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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