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다리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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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다리의 평화
  • 조성돈 교수
  • 승인 2018.05.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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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도보다리에서 둘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봄기운이 올라 밝은 녹색을 뿜어내는 자연 가운데 파묻힌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평화’라는 생각을 했다. 참 평화롭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언어는 선조들의 지혜이다. 평화(平和)는 ‘평평할 평’ 내지는 ‘다스릴 평’으로 뜻을 매기는 한자와 ‘화할 화’자로 이루어져 있다. 평(平)자는 무엇보다 반으로 정확히 잘 가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운데를 가르는 그 중심선으로 그 양쪽에 잘 자리한 것들을 보면 무엇보다 평화의 전제는 공평하게 나누는 것으로 보인다. 그 공평은 더 생각해 보면 정의이다. 어느 누구도 억울한 생각이 들지 않도록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의 의미를 더해 보면 어떤 사람들의 핸디캡, 즉 장애나 부족함으로 인해서 적게 받지 아니함을 의미한다. 즉 사회적 약자들도 인간답게 살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된 자들이 이 사회에서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공평이고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은 화할 화(和)자이다. 벼화(禾) 변에 입구(口) 자를 썼다. 즉 밥을 입에 넣어 주는 것이 화목의 근본이다.

성경은 평화를 샬롬이라고 한다.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나 다툼이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샬롬은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이 창조세계가 모두 그 지으신 뜻에 따라 사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그렇게 살아가고 존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 세상에 청지기로 세우신 것은 바로 이 샬롬을 유지하는데 그 뜻이 있다. 다스린다는 것을 오해하여 사람들은 다른 피조물들을 정복하고 악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개념은 더불어 함께 창조의 조화 가운데 존재하며 그 질서를 유지해 나가는데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나는 이사야 선지자의 꿈이 떠오른다. 이리와 표범, 사자와 곰, 그리고 독사가 어린 양과 어린이와 함께, 그리고 어린 염소와 암소와 함께 뒹굴며 장난하게 될 것이라는 그 꿈 말이다. 하나님 나라가 오게 되면 이러한 맹수들이 변하여 그 연약한 가축들과 함께 더불어 살 것이라는 이 선지자의 예언은 나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우리는 이 맹수와 같은 인간들과 살고 있다. 자칫 잘 못하면 이 맹수들에 의해서 잡아 먹힐 것이라는 불안을 껴안고 살고 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내가 이리가 되고, 내가 표범이 되기도 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먹히는 짐승이 아니라 먹이를 찢어먹는 맹수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가 오면 이 모든 것이 변하여 맹수가 가축들과 함께 더불어 살 것이라고 한다.

도보다리 티타임 장면에서 나는 그 평화의 한 단면을 보았다. 맹수와 같던 자가 유순해져서 자연 가운데 하나가 되어 차를 마시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이제 우리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사람들의 입에 밥을 먹이며 참 평화를 이루어가게 될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 날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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