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살림·식당이 불교 용어였다고요?”

모르고 사용하는 일상 속 불교 용어 한현구 기자l승인2018.05.16 09:25:12l수정2018.05.16 10:17l14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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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뿌리 깊은 교육자 집안인데 자녀들이 재산 상속 문제로 아주 야단법석이라더라.” “말도 마. 그 집 아들 성격이 아주 건달 같아서 아버지 속을 무진장 썩였나보더라고.”

막장 드라마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친숙한 대화다. 그런데 우리 귀에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 대화 곳곳에 불교 용어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이 문장 속에는 불교 용어가 몇 개나 포함돼 있을까.

정답부터 말하면 5개다. ‘명색’, ‘상속’, ‘야단법석’, ‘건달’, ‘무진장’이 불교에서 유래한 용어들이다. ‘상속’은 원인이 결과를 낳고 결과가 다시 원인을 낳는다는 불교 사상에서 유래했고 ‘야단법석’은 야외에서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뜻, ‘무진장’은 무진한 덕이 많아 한량이 없음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이다. ‘명색’과 ‘건달’은 모두 산스크리트어를 기원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이것도 불교 용어였어?’하며 고개를 갸우뚱 거릴 만한 단어들이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있다.

이렇게 많다니, 일상 속 불교 용어

불교에서 유래된 용어 중에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시간 쓰이면서 일반 명사로 활용되는 단어들이 많다. 대표적으로는 ‘과거, 현재, 미래’를 꼽을 수 있다. 또 ‘살림’이라는 단어는 절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가리켰고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 역시 득도한 인물을 일컫는 불교 용어다.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는 ‘식당’은 본래 음식을 먹으며 불도를 수행하는 장소로 ‘금당’, ‘경당’, ‘강당’ 등과 함께 절이 갖춰야 할 7대 요소 중 하나였다. ‘심금을 울리다’는 말도 석가모니가 거문고 비유를 통해 제자들을 가르친 일화에서 나왔다. 이 단어들은 얼핏 들어서는 불교 용어라고 상상하기 힘들다.

‘화두’, ‘찰나’, ‘나락’ 등은 불교 용어임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들이다. ‘화두’는 불교의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탐구하는 문제를, ‘찰나’는 불교에서 최소 시간 단위를, ‘나락’은 밑이 없는 지옥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다.

그런가하면 불교에서 전래됐지만 지금은 의미가 달라진 단어들도 있다. 잘못을 눈감아 준다는 의미로 쓰이는 ‘묵인’은 원래 불가의 가르침을 먹물로 도장을 찍듯 마음속에 새긴다는 뜻의 불교 용어였다. “면목이 없습니다”라는 표현으로 주로 쓰이는 ‘면목’은 원래 불성이 깨달음에 이른 경지를 의미했지만 지금은 체면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밖에도 일상 속에 흔히 사용되는 불교 용어로는 ‘산화’ ‘무심’ ‘방편’ ‘결집’ ‘관념’ ‘대중’ ‘출세’ ‘다반사’ ‘무아지경’ ‘아비규환’ ‘이판사판’ ‘아수라장’ ‘보살피다’ ‘포섭하다’ 등을 찾을 수 있다.

기독교 속에도 불교 용어가 있다고?

“‘장로’님, 이번 ‘전도’ 집회 위해서 ‘기도’ 많이 해주세요!” 우리가 당연하게 기독교용어로 알고 있는 단어 중에도 불교에서 전해진 단어들이 적지 않다.

해외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면서 한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번역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불교 용어들을 차용한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단어들은 교회 안에서 복음의 의미가 덧입혀져서 널리 쓰이고 있다.

비기독교인들도 교회 용어라고 인식하고 있는 ‘장로’는 원래 불교에서 지혜와 덕망이 높고 나이가 많은 비구를 일컫는 말이었다. 불교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다보니 포털 사이트에도 ‘개신교 교회에서 목사를 도와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평신도 최고의 직급’으로 검색된다.

교회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인 ‘전도’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불교에서 전해졌다. 석가모니가 부처가 된 후 도를 널리 전하라고 따르는 이들에게 명령한 데서 유래한 것. ‘기도’와 ‘제사’라는 용어도 불교계에서 먼저 쓰였다.

내세나 종말과 관련된 용어도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천당’이나 ‘지옥’, ‘말세’ 등이 불교에서 가져온 단어들이다. 이처럼 불교에서 전래된 기독교 용어 대부분은 불교적 의미가 퇴색되고 기독교 용어로 정착된 경우가 많다.

공염불·타계·귀의, 교회에선 안돼요~

단어의 의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같은 문화권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달라진다. 따라서 더 이상 불교적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는데도 단순히 불교에서 유래된 단어라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일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같은 말들은 대체할만한 단어도 당장 떠오르지 않을뿐더러 불교 용어를 일체 배제하고 대화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불교적 의미가 아직 남아 있어 교회에서 조심하고 자제해야 할 용어들도 분명 존재한다.

‘극락’과 같은 단어는 교회에서 ‘천국’이라고 사용해야 한다. ‘타계’의 경우 ‘돌아가셨다’고 하거나 ‘별세’라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타계’란 불교 세계관에서 인간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 넘어갔음을 뜻하는 말이다. 기독교로 ‘귀의’했다거나 기도 ‘삼매경’이라는 말도 불교적 색채가 강한 표현들이다.

교회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크리스천이라면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한 표현들도 있다. ‘인과응보’라거나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라는 표현은 불교의 윤회 세계관에 입각해서 나온 표현이다. 착한 사람을 가리켜 ‘보살’이라거나 ‘해탈했다’고 표현하는 것도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공염불’이나 ‘도로아미타불’ 역시 마찬가지다.

‘교회 속 불교·도교 용어들 이것만은 바로잡자’를 집필한 서재생 목사는 “우리 의식구조는 무속, 불교, 도교, 유교적인 혼합종교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하루아침에 불교용어를 모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문제의식을 갖고 기독교 용어로 순화하려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현구 기자  hhg@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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