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꾸미고 눈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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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꾸미고 눈을 그리고
  • 정석준 목사
  • 승인 2018.05.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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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미국 국적을 얻기 위해 산모들이 출산일에 맞추어 도미하는 일들이 있었다. 최근에는 사주에 맞춰 ‘팔자’가 가장 좋은 날을 정하여 ‘제왕절개’를 하고 아이를 낳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국적을 가져도, 소위 팔자가 좋은 날에 태어나도, 일생을 살아가면서 큰 나라의 국적이나, 좋은 팔자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일들이 벌어진다.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시간’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 관건이다.

어릴 때, 참 궁금했던 여러 가지 중에 하나가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계산하고 맞추어 살았을까 하는 일이었다. 물론 학교에서 조선시대의 해시계, 물시계 등을 배웠지만 정확하게 그 과학적 구조와 이해를 갖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군다나 오늘 나에게 시간이란 한반도를 관통하는 동경127도 30분이 기준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과학적 탐구의 지식에 대한 결핍의 절박함을 초래한다.

재미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잰다’라는 어원을 가진 그리스어 ‘aion’에서 ‘시간’이란 의미의 ‘aera(계산된 수)’가 생겨났는데, 우리말의 소리음과 비슷하다. 이 ‘잼’의 기준으로 역사상 정치상의 시대, 문화와 문명으로 특정 지어진 연대, 새 시대를 여는 중요한 날의 의미 등으로 영어는 모두 ‘이어뤄, 혹은 에뤄(a)era’를 사용한다.

‘이스르엘’에 입성하는 혁명가 ‘예후’를 기다리는 ‘이세벨’은 머리를 꾸미고 눈을 그리며 화장을 고쳤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몸이 내던져 버려짐을 당할 창문에 걸터앉아 그를 맞는다. 남편은 이미 전사했고, 그의 아들과 외손자도 죽고 그녀의 잔혹했던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었다. 알든 모르든, 시간은 이미 반란에 성공한 예후나, 무서울 것 없이 평생을 악행으로 일관해 온 이세벨의 삶을 끝낼 공격을 개시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꿈을 갖고, 도전하여 무엇인가를 이룰 때까지 세상엔 무서운 것들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 성공지향으로 그 두려움을 이겨내려 한다. 그러나 정작 이루거나, 채 이루지도 못한 상태에서 예고 없이 불쑥 찾아와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는 것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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