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그리고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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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그리고 약속
  • 이찬용 목사
  • 승인 2018.05.0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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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용 목사의 행복한 목회이야기 ⑬

“절대로 말을 쉽게 하시면 안 됩니다. 그분들은 그 말이 약속인 줄 아십니다.”

23년 전 쯤 되는 것 같습니다.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섬, 소록도에 처음 갔을 때 소록도교회를 담임 하시는 목사님이 우리 일행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소록도에 와서 그분들이 사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다시 올게요” 하고 돌아서지만 그 분들은 약속으로 듣고 평생을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우리들은 ‘언제 밥 한번 먹자’ 같은 말이지만 그 분들은 평생을 기다리시기 때문에 절대 할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아 달라”는 것 이었습니다.

8명의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방에서, 저는 “할머님들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까지 1년에 한번 이상은 꼭 찾아뵙겠습니다. 대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라고 약속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루 세 번 예배드리는 소록도교회, 새벽예배 성가대가 서는 그곳에서 그 할머니들은 가난한 개척교회 목회자였던 저를 위해, 우리 아이들과 가정과 교회를 위해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년 그분들을 찾아 뵈었구요, 올해가 스물세 번째 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모두 돌아가시고 올해 101살인 박태금 할머니와 80세가 넘으신 김경술 장로님 두 분만 살아계십니다.

박태금 할머니는 눈도 보이지 않고, 손목도 몽그라진 모습입니다. 버거운 세월을 보내느라 몸이 점점 쪼그라져 아예 한줌이 되셨구요. 그나마 몇 년 전 봉사 온 친구가 그 할머니를 침대에서 옮기다 떨어뜨려서 허리도 굽으셨습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에 치매도 친구가 되고, 기억력도 사라져가고, 우리네 인생에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것들이 그 할머니 몸에선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카랑카랑한 소리로 기도를 하면 가슴이 ‘울컥~’ 하고 울리기도 하고, ‘아~ 이런 모습이 주님과 함께 고통의 세월을 보내오신 분들이 갖는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었습니다.

두 주 전에 소록도를 찾아, 침대에 쪼그라져 있는 박태금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눈도 보이지 않고, 기억력도 없고, 누군가 밥을 떠 먹여줘야만 겨우 지탱할 수 있는 몸을 가진 아주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할머니. 이젠 제가 온 것도 모르십니다.

우리 교회가 건축할 때 기꺼이 건축헌금을 해 주시던 할머니가 아닙니다. 저랑 같이 간 목사님들에게 2만원의 용돈을, 저에겐 10만원의 용돈을 주시기도 했고, 카랑카랑한 소리로 기도해 주시던 할머님 대신, 가냘픈 체구를 가진 한 할머니가 때론 엉뚱한 말을 하며 누워 있을 뿐입니다.

머리를 가만히 만져 보았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 감사합니다! 주님!!”
박태금 할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습니다. 몸도 지탱할 힘이 없는, 정신조차 가다듬을 힘이 없는 나약한 몸으로 100년을 지탱해 온 할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 고백을 듣자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박태금 할머니는 무의식 중에도 예전에 했던 그 고백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 들으셨죠? 우리 박태금 할머니의 이 고백을 말입니다. 기쁘게 받아 주시고 훗날 혹시 저도 이런 고백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복을 주옵소서.” 이렇게 조용히 고백하는 기도가 나오더라니까요. 

소록도, 그곳은요 상처 받은 영혼이 또 다른 영혼을 치유하는 장소랍니다.
부천 성만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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