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聞)과 청(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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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聞)과 청(聽)
  • 김한호 목사
  • 승인 2018.05.0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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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목사/춘천동부교회

듣는 것을 ‘문’과 ‘청’으로 구분합니다. ‘聞(문)’은 대문 틈에 귀를 대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Hearing’, 들리는 대로 듣는 것입니다. 소문이 이에 해당합니다. 반면, ‘聽(청)’은 귀를 왕처럼 중요시 여기며 열 개의 눈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듣는 것입니다. 집중해서 듣고 마음으로 듣고 새겨듣는 모습, 즉 ‘Listening’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으로 들었습니다. 들려온 대로 듣고 마음으로 새겨듣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불순종이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음성을 ‘청’으로 들었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이 ‘문(聞)’과 ‘청(聽)’의 차이입니다.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 ‘무리’라는 장애물 앞에서 난감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붕으로 올라갑니다.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어디서 이런 기발함과 용기가 나왔을까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문(聞)’으로 듣지 않고 ‘청(聽)’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청’으로 들었기에 생긴 확신이 그들 속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믿음을 칭찬합니다. 그리고 중풍병자에게 ‘네가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합니다. 모든 죄 사함을 위하여 친히 제물 되시고 십자가에서 ‘영원한 죄사함의 제사’를 드리시려는 예수님이 죄사함의 합당한 권세로 사죄의 은총을 선언하신 겁니다. 좋아해줄 일인데, 서기관들은 매우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저건 명백한 하나님 모독이야!” 그들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말장난이 아닌 사죄의 권세를, 불쾌히 여기는 서기관들 앞에서, 병을 고치는 표적과 권능으로 똑똑히 보여주신 겁니다. 주님의 말씀에 중풍병자는 일어나서 걸어갑니다. 그 놀라운 광경 앞에 서기관들은 말문이 막힙니다. 말씀을 문으로 듣고 달달 암송할 뿐 말씀의 능력은 없는 서기관들과는 달리, 복음의 말씀을 청종(聽從)했던 믿음의 네 사람은 중풍병자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일종의 ‘몸으로 했던 중보’였습니다.

‘중보(Intercession)’는 ‘사이(Inter)’와 ‘인계(cession)’의 합성어입니다. 둘 사이를 연결시키거나 인계해준다는 뜻입니다. 친구로 보이는 네 사람은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인계해 드렸습니다. 병에서 놓임 받게 할 구원의 능력이 주님께 있는 까닭입니다. 무엇을 알게 됩니까? 인계자(중보자), 즉 중보의 뿌리 역시 ‘청(聽’)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청으로 듣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소망의 확신과 함께 중보의 권능이 임합니다. 그 중보가 돌파의 길을 열고, 힘을 주며, 마침내 선한 영향력의 결과도 얻게 합니다. 난감한 상황일수록 중보의 권능도 더해집니다.

말씀을 청으로 들을 때 아름다운 중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주위의 어려움 당한 이들을 위해 몸과 마음으로 중보하며 주님께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Intercession christian’들이 더없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눕게 만들고, 눈물 나게 만들고, 좌절하게 하는 온갖 중풍병에서 사랑하는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아름다운 기적들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살아가는 곳곳에서 가슴 뭉클 일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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