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올인’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죠"

[신앙과 삶]한국영화의 거장 이장호 감독 손동준 기자l승인2018.05.01 00:13:40l수정2018.05.02 09:38l14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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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보극장 신우회에서 처음 만난 하나님
‘시선’ 이후 4년간 ‘서서평’ 영화화 구상

▲ 한국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장호 감독. 가죽재킷과 꽁지머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 감독은 인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서서평’ 선교사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

1974년 데뷔작인 영화 ‘별들의 고향’으로 46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당시 한국영화 최다관객 스코어를 갈아치웠던 이장호 감독. 충무로의 풍운아로 소문난 그가 이제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4년 전인 지난 2014년에는 영화 ‘시선’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기독극영화 제작에 나서기도 했다. 우여곡절 많았던 인생을 돌아보며 “하나님은 실패까지도 사용하시는 분”이라고 말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에 위치한 사무실 ‘시네마 천국’을 찾아가봤다.

 

충무로의 풍운아 부적을 태우다

“종교 인터뷰는 겁이 납니다. 해놓고 나면 검증 안 된 이야기를 한 것 같거든요.” 칠순이 넘은 한국영화의 거장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 치고는 조심스럽다. 

한 때 신학을 공부했던 전직 신학생이자, 현재는 교회 은퇴 장로(길교회)지만 간증 인터뷰는 매번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가죽재킷과 꽁지머리가 대변하는 영원히 철들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답게 이장호 감독은 스스로를 “유년 시절에서 덜 자란 사람”이라고 말했다. 

‘별들의 고향’은 데뷔작이자 그를 유명 감독의 반열로 올려놓은 작품이다. 자랑스러울 법도 한데 뜻밖의 반응이 나왔다. 오히려 준비 안 된 성공에 당황했던 청년 이장호를 회상했다.

“별들의 고향을 이야기하려면 항상 쑥스러워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나온 작품이었습니다. 소설 원작자인 최인호가 제 친구여서 쉽게 이야기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게 큰 성공을 거둔거죠. 영화로서는 많이 부족한 점이 많은 작품이었어요. 요즘 젊은 감독들은 영화판에 나오기 전에 이미 전문가 수준이 되지만 저희 때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현장에서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것 외엔 영화를 공부할 길이 없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성공은 젊은이의 삶을 뒤흔들어 놨다. ‘고용된’ 감독이었기에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이장호’라는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작품이 성공하고 나니까 악마가 마음에 바람을 집어넣었어요. ‘허영’이었죠. 철부지에 열등감 투성이였던 놈이 오만해진 겁니다. 세상의 나쁜 짓은 죄다 몸에 익숙하게 되는 겁니다. 대마초 사건에 걸려서 작품 활동이 중단됐을 때, 악마는 아마 자기 생각대로 됐다며 좋아했을 겁니다.”

4년간의 활동정지는 쓰라렸지만 오히려 영화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이 감독은 “그때까지도 크리스천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일깨워 주신 것 같다”고 했다. 작품 활동을 멈추고서야 한국영화가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것.

“영화판에 있을 때는 한국영화에 대한 객관적인 눈을 갖지 못했다가 못 만들게 되니 한국영화가 현실을 그리지 못함을 알게 됐습니다. 리얼리즘이 실종됐던 거죠.”

리얼리즘에 눈을 뜨고 나서 만든 작품이 바로 ‘바람 불어 좋은날’(1984)이었다. 이 감독 스스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자 ‘인생을 바꾼 중요한 계기’라고 말하는 작품이다. 크리스천이 된 것도 이 작품이 개봉할 무렵이었다. 영화배우 신영균 장로가 운영하던 명보극장을 밥 먹듯이 드나들던 때였다. 극장 직원들로 구성된 신우회 성경공부에 초대를 받아서 갔더니 고 하용조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목사님이 어떤 말씀을 전하셨는지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인데 기억나질 않는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죠. 그런데 말씀을 전하시던 분위기랄까, 공기가 참 좋았습니다. 그분 말씀을 듣고 난 뒤 지갑 속에 있던 부적이 생각났어요. 어머니가 부적을 두 장 받아오셨는데 한 장은 지갑 안에, 한 장은 명보극장 스크린 뒤에 붙였었죠. 부끄러운 마음에 신우회 사람들 앞에서 부적을 태웠습니다. 스크린 뒤의 부적도 몰래 가서 뗐고요. 여태까지 불신자로 살았던 놈이 부적을 태우면 찝찝했을 법도 한데 마침 영화가 잘되고 손님까지 많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그것조차 하나님의 역사인 것 같았죠. 그렇게 초보 신앙인이 됐습니다. 허허”


방황을 끝내고 예수를 만나다

이 감독의 열정은 교회를 다니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빈민들을 대상으로 사역했던 고 허병섭 목사를 따라 달동네로 들어가 전도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어느 날 허병섭 목사라는 분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대뜸 하는 말이 고맙다고,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면 그게 목회자의 일을 대신 하는 것이라고 해요. 그 말이 사람을 울리더라고요. 나는 맨날 영화를 인기나 돈벌이로 생각했는데, 내가 만든 영화에 갸륵한 뜻이 있다니까 감동한거죠. 그날로 그 목사님 교회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해서 달동네에 있는 빈민선교회에 나가게 됐죠.”

이 감독의 적극적인 전도로 미아리 산동네에 동월교회는 영화인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배창호 안성기 이보희 등을 전도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이후에도 신앙의 기복은 계속됐다. 뜨거웠던 때가 있었던 반면에 한동안 교회를 나가지 않으며 다시 방탕한 옛사람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1987년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버스를 들이받았는데 옆에 탔던 영화사 직원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50일간 반신불수처럼 병원에 누워있어야 했다. 사람을 죽였다는 공포감과 죄책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병원에 있는 동안 밤마다 고통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 사고를 겪은 뒤에서야 이 감독은 본격적으로 말씀에 매달리며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부질없는 것’에 집착하던 옛사람을 버리고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작품 활동을 중단했고 후학양성에 집중했다. 신학교(백석신학교)에 편입해 신학공부를 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영화 ‘시선’ 그리고 ‘서서평’

그러던 그가 19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 바로 ‘시선’이었다. 2014년 4월 부활절을 즈음해 발표한 이 작품을 두고 ‘영화계를 주름잡던 거장이 복귀했다’며 각종 매체가 집중했다. 엔도 슈샤쿠의 원작 ‘침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배도와 순교를 놓고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영화였다. 

그런데 그때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세월호 사건으로 온 국민들이 슬픔에 잠겨 극장을 찾을 겨를이 없을 때였다. 영화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속상한 마음도 컸지만 “그 조차도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 것 같다. 흥행이 잘됐으면 제가 돈 쓰는 것 밖에 더 됐겠느냐”며 담담하게 말했다.

시선 이후 4년여의 시간동안 그는 새로운 작품을 준비해왔다. 이 감독은 “내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며 조선을 사랑한 여인 ‘서서평 선교사’에 대한 극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레디컬 마더 서서평’이라는 제목도 미리 정해놓았다. 

이미 지난해 한 기독교방송국에서 ‘서서평’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다룬바 있지만, 그보다 먼저 준비를 해온 작업인 만큼 계획대로 크랭크인 하겠다는 각오다. 스토리 구상도 어느 정도 마쳤다. 극의 재미를 위해 만든 가상 인물의 투입 여부를 두고 고민하고 있지만 조만간 가닥을 잡을 계획이다. 

그는 서서평 선교사처럼 하나님께만 ‘올 인’하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표라고 말했다. 

“서서평 선교사는 정말 급진적인 신앙인이었어요. 반면에 저는 완만한 신앙생활을 해왔죠. 제 최상의 목표는 서서평 선교사처럼 매진하는 것, ‘올 인’하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랑 비교하면  욕심도 많이 줄고 세상의 유혹도 많이 줄었어요. 그래서 더 편안합니다. 여생을 하나님께 전념할 수 있겠다는 장밋빛 기대도 가지고 있습니다. 내 마지막 작품에는 그런 마음들이 잘 녹아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손동준 기자  djson@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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