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꼭 치열해야 하나요?"…교회여 '무민 세대'에 응답하라

스펙 쌓기 지친 청년들 무위휴식 좇은 결과
교회와 청년들,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김수연 기자l승인2018.04.12 13:33:38l수정2018.04.12 17:52l14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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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A씨(31·여)는 요즘 틈날 때마다 공원을 찾는다. 그리고 짧게는 10분, 길게는 30~40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벤치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그는 "누군가는 시간 낭비라 할 수 있겠지만 스트레스 해소에는 넋 놓고 가만히 있는 게 최고"라며 "삶이 꼭 치열하리란 법만 있나요?"라고 반문한다.

각박한 사회에 지친 청년들 '쓸모없음'을 추구하다 

1분1초를 꽉꽉 채워 살며 잠시라도 무언가 하지 않으면 어색해하고 죄책감을 느끼던 청년들이 달라지고 있다. 쓸모없고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에 눈을 돌린 것. 이런 세대를 요즘 사회는 한자 '없을 무'(無)와 의미를 뜻하는 영단어 'Mean'을 합쳐 '무민 세대'라 부른다. 

이달 말 한강에서 열리는 '멍 때리기 대회'를 비롯해 책장 넘기는 소리 또는 사각 거리는 연필 소리 등을 담은 ASMR이 인기를 끈 것도 무민 세대 때문이다. 20대 사이에서는 인공 잔디·목탁·마네킹 다리 등 쓸 데 없는 선물을 주고받는가 하면 의식의 흐름대로 툭툭 내뱉는 '아무 말 대잔치'가 유행이기도 하다. 느릿느릿 밥 짓고 평범한 수다를 떠는 예능이나 고양이의 행동을 가만히 관찰하는 유튜브 영상이 대세로 떠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무민 세대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경쟁사회에서 성공을 위한 스펙 쌓기에 지친 청년들이 무위휴식을 좇게 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던지고 이제는 "꼭 무엇이 되지 않겠다!" 혹은 "무엇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실제로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성인남녀 118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40.2%가 '스스로를 무민 세대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무민 세대가 된 이유로는 '취업·직장생활 등 치열한 삶에 지쳐서'(60.5%), '노력해도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아서'(34.1%), '별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어서'(19.2%) 등을 꼽았다. 빡빡한 현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를 옭아매기보다 맥락 없는 곳에서 유희를 찾고 비생산적인 일에서 위안을 얻으려는 무민 세대의 가치관은 바야흐로 청년들의 시대정신이 된듯하다.

무민 세대 가치관, 이대로 괜찮은가? 

그러나 전문가들은 무민 세대의 확산에 적잖은 염려를 내비쳤다. 김성준 비전을꿈꾸는사람들 대표는 "반복된 좌절에 청년들은 상실감·허탈감을 넘어 급기야 무기력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증상이 심화돼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에 빠지면 신앙의 위기로도 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나님 안에서 소명과 비전을 갖고 살아야 할 청년들이 '나는 무엇 때문에 살지?'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표를 달성하지 못해 낙심한 나머지 '무엇도 하지 않겠다'는 무민 세대의 외침은 성경적 가치관에도 모순된다. 이상갑 청년사역연구소 소장은 "하나님은 최고가 되라고 하지 않으신다. 다만 모든 일을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하라 하신다"면서 "청년들이 스스로를 거룩한 제사장으로 여기고 자기 나름의 뜻을 정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별 것 아닌 것'에도 관심을 두자는 무민 세대의 가치관은 얼핏 보면 성경적이다. 그러나 뚜렷한 목적 없이 '홀가분한 일상을 살자'는 자조적 태도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일이다. 백광훈 문화선교연구원 원장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는 로마서 12장 말씀에 비춰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임을 되새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와 크리스천 청년들은 무민 세대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교회, 정죄 아닌 긍휼로 청년들 품어야

우리 모두는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는 귀한 존재다. 하지만 팍팍한 일상에 치인 청년들은 그동안 일부 교회에서마저 이따금씩 '네 입을 넓게 열라', '부와 명예가 있어야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올려드린다'는 식의 설교를 들어야 했다. 전문가들은 쉼을 누려야할 교회가 사회와 똑같이 성공을 요구하지는 않았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아울러 교회는 무민 세대를 탓할 것이 아니라 무민 세대를 양산한 사회적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 교수는 "교회가 무민 세대를 한심한 듯 정죄한다면 다음 세대는 교회를 떠나갈 것"이라면서 "대화의 장을 마련해 청년들의 문제에 공감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5년 천안에 주는교회를 개척한 남건호 목사는 이 같은 교회의 역할을 잘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청년들의 뼈아픈 고민을 들어주다가 창업까지 돕고 있는 것. 유독 20대가 많은 지역,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꿈을 포기하는 청년들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그는 3년 새 무려 5명의 청년에게 교육비·사무실 보증금 및 월세 등을 대가 없이 지원했다. 덕분에 불신자였던 청년 20여명이 전도돼 현재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남건호 목사는 "인생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았던 20대 때, 정작 내 고민을 들어주는 멘토가 한 명도 없어서 힘들고 외로웠다. 그때 친구 같은 목회자가 되리라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회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피할 바위가 돼주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 청년들이 하나님께 받은 고유의 은사를 바탕으로 비전과 소명을 따라 살게 도와야 한다"고 전했다. 

청년들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분별해야

그런가 하면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끊임없이 비전을 고민하고 현실로 이뤄내기 위한 크리스천 청년들의 자발적인 모임도 있다. 두 달에 한 번 90여명의 청년들이 모이는 '비저니어스 콘퍼런스'(Visioneers Conference)가 그것. 지난해 9월 시작된 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은 다양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부터 직장인, 청년문제를 고민하는 사역자도 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정보와 자원을 공유하고 '소명'을 주제로 한 강연과 워크숍 등을 진행한다. 

행사를 기획한 최예인(29세·부천동광교회)씨는 "믿음을 갖고 말씀대로 사는 게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며 "이 모임에서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해도 비슷한 고민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서로 큰 힘을 얻는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은 훌륭한 사람에게 소명을 주시고 쓰시는 게 아니라, 소명대로 살겠다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면서 "부르신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겠다고 결단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김수연 기자  ksy@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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