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실천한 신앙인’ 김교신 선생 생가, 사역지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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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실천한 신앙인’ 김교신 선생 생가, 사역지로 재탄생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8.04.0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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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순교자의소리, 김교신 선생 생가 ‘김교신홈’으로 복원
▲ 지난 5일 한국 순교자의 소리가 '김교신 홈' 개관식을 열었다. 현장에는 미국 순교자의소리 전 대표 짐 다우 목사(오른쪽 첫 번째)와 김교신 선생의 넷째 딸 김정옥 여사(가운데)도 함께 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삶으로 실천하는 신앙으로 기독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던 김교신 선생(1901~1945)의 생가가 복음 전파를 위한 사역지로 재탄생했다.

한국 순교자의소리(대표:폴리 현숙)는 서울시 정릉동에 위치한 김교신 선생의 생가를 ‘김교신홈’으로 리모델링하고 지난 5일 개관식을 열었다.

김교신홈은 앞으로 북한선교를 위한 AM, 단파 및 위성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로 활용되며, 기독교 순교자 및 초창기 한국 기독교인들의 글을 출판하는 인쇄소 역할도 맡게 된다.

해외에서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을 위한 선교단체로 알려졌던 순교자의소리가 초창기 한국 기독교인들의 영성에 집중한 이유는 개관식 테이프 커팅에 사용했던 리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날 테이프 커팅 리본은 적색, 녹색, 흰색 등 세 가지 색으로 구성됐다. 적색은 신앙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순교자, 녹색은 자신의 꿈과 계획에 대해 죽는 순교자, 흰색은 세상의 부귀와 명예에 대해 죽는 순교자를 각각 상징한다.

폴리 현숙 대표는 “실제 목숨을 잃은 신앙인만이 순교자가 아니라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 죽기로 결심한 모든 신앙인이 순교자”라며 “진정한 순교자의 삶을 살았던 초창기 한국 기독교인들, 특히 김교신 선생의 순수한 신앙과 삶을 이어받고 발굴하기 위해 이곳을 사역지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생가를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복원하지 않고 사역지로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에릭 폴리 목사는 “김교신 선생의 신념처럼 교회는 건물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집과 가정에서도 이뤄질 수 있음을 나타내고 싶었다”며 “김교신 선생도 바로 이 집에서 성서조선을 펴냈다. 우리도 그 정신을 이어받아 이곳을 사역지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개관식에는 김교신 선생의 넷째 딸 김정옥 여사도 참여해 감동을 더했다. 김 여사에게 김교신홈은 실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삶의 터전이자 김교신 선생이 성서조선을 제작할 때 돕기도 했던 추억의 공간이다.

김 여사는 “아버지는 삶에서 신앙을 몸소 실천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때의 기독교는 교회에 가서 찬양 부르는 행위를 말하지 않았으며 예수를 믿으라고 입으로만 외치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기독교는 예수를 닮아 사는 것이었으며 예수의 삶이 내 삶에서 나타나는 것이었다”며 “초창기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열정이 지금 한국교회에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김교신 선생은 종교개혁자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신앙인이자 교육자였다. 무교회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는 김 선생은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근거는 성경이고 교회는 기독교를 담아내는 형식’이라고 강조했으며 교권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함석헌 선생과 함께 기독교 잡지 ‘성서 조선’을 발간했으며 조선 민족의 소생을 노래한 글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지난 2010년 광복절 뒤늦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 '김교신홈' 내부에 마련된 자료실. 왼쪽부터 선생의 넷째 딸 김정옥 여사, 폴리 현숙 대표, 에릭폴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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