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은 우리 역사, 기억하고 기도해 주세요”

[인터뷰]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동행위원장 박용수 장로 이인창 기자l승인2018.04.05 14:07:11l수정2018.04.12 08:15l14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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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일대에는 고려인 4천여명이 모여 살고 있다.

고려인은 우리 한민족의 슬픈 역사의 흔적이다. 1937년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조선 사람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된 사실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안다. 현재 고려인으로 불리는 강제이주민의 후손 50만 명이 중앙아시아 각국에서 흩어져 살아가고 있다.

▲ 고려인동행위원장 박용수 장로는 4천여명 광주 고려인들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고국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국내 거주하는 고려인은 약 5만여명. 임금체불, 차별과 편견, 언어소통, 강제추방 등 이만저만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행히 그들에게는 돕는 손길이 있다.

광구 고려인마을에는 박용수 장로(광주 큰사랑교회)가 대표적 인물이다. 광주지역 내 각계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고려인동행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용수 장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이 공감하면 재원을 만들어주시고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지난 3월 9일 박용수 장로를 만나 그의 신앙과 고려인을 위한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고려인을 위한 ‘시스템’ 만들기
광주 고려인마을은 안산에 이어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려인들이 사는 곳이다. 2000년대 초반 고려인 마을의 대모 신조야 씨와 이천영 목사(새날학교) 등이 고려인 마을공동체가 형성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광주 고려인마을 가장 큰 특징은 자치 인프라가 짜임새 있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를 비롯해 협동조합, 문화센터, 고려인교회, 고려FM, 나눔방송, 새날학교 등 고려인들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고려FM은 어플을 통해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들까지 애청하고 있다. 고려인 마을의 소식지 나눔방송도 매일 12만명이 받아볼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지역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초창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청 등 관공서뿐 아니라 지역사회, 언론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협력하고 있다. 광주시의회는 고려인 주민 지원을 위한 조례까지 지난 2013년 제정했다.

박용수 장로는 고려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중심축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특히 지난해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이었다. 박 장로는 고려인 강제이주 기념사업위원장을 맡아 지역사회 여론을 모으고 지역사회 인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 공로가 인정돼 지난 1월 출범한 고려인동행위원회 위원장까지 맡게 돼, 계속해서 고려인과 광주시민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주고 있다.

▲ 지난 3월 지역 의료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문을 연 고려인 무료 진료소. 진료소는 경제적 형편 때문에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는 고려인들에게 소중한 공간이 되고 있다.

성과도 크다. 13명 법률가들이 무료 법률상담을 해주는 법률지원단을 만들었고, 의료인 23명이 참여한 가운데 의료지원단을 구성해 3월 초에는 고려인 무료진료소를 개소했다. 분야별 지원 시스템을 만드는 역할을 박 장로가 책임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땅에 돌아온 고려인들이 기억되어야 할 역사이고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려인 강제이주는 인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반인륜적 잔혹사였습니다. 우리 고려인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또한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고려인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고려인과 만남은 하나님의 계획”
박용수 장로가 고려인과 맺은 인연은 우연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 듯하다.

박용수 장로가 2006~2007년 광주CBS 본부장으로 재직 중일 때였다. 2006년 당시 고려인을 포함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한 무상 대안학교를 고민하던 이천영 목사를 방송국에서 만난 것이다. 이 목사는 박 장로에게 학교 설립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고 그때부터 같이 기도하기 시작했다. 학교 설립을 위한 기도회를 위해 방송국 공간을 내어주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다문화 무상 대안학교가 설립된 순간이었다.

‘새날학교’ 이름도 박 장로가 제안한 것이다. 성경말씀에서 착안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날을 시작하니 새날학교라고 하지요”라며 제안한 것이다. 2007년 학교가 시작될 당시에는 무척이나 열악했다. 문닫을 뻔한 위기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다문화 대안학교로 알려져 있다.

진도가 고향인 박 장로는 광주에서 대학까지 공부했고, 광주CBS에서 근무하면서 지역 정재계와 교계 등을 아우르는 정보와 네트워크를 갖게 됐다. 그가 쌓아온 많은 자산과 동력이 지금은 우리 사회의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 고려인들을 위해 쓰이고 있다.

박 장로가 고려인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론인으로서 소명과 신앙적 경험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1985년 CBS 기자로 입사해 2014년 자회사 사장으로 퇴직한 그는 특히 1987년 CBS와 광주를 의미 있게 기억했다.

“신군부 정권에 의해 빼앗겼던 CBS뉴스 보도권 회복하기 위해 1987년 광주CBS에서 처음으로 단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본사를 비롯해 전국으로 확산됐어요. 한국방송민주화운동사에도 기록돼 있는 역사인데, 그 때 광주지역 목사님들이 철야 금식기도를 하면서 대신 싸워주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가장 뜨겁게 만났던 것 같습니다.”

광주 고려인마을을 위한 그의 헌신은 그 당시 광주로부터 받았던 보은인지도 모른다. 약자를 위해 기도해준 교회를 향한 감사이기도 하다. 그는 여전히 광주지역 목회자들과 깊이 교류하면서 고려인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지원할 지 연결점을 찾아가고 있다.

▲ 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 노동부장관이 광주 고려인마을을 방문했을 때 박용수 장로가 동행해 설명하고 있다.

고려인 4세 비자문제 “기도해주세요”
광주 고려인마을이 어느 지역보다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방인처럼 여러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 무엇보다 고려인 4세 이후의 비자문제이다. 현행법에서는 고려인 4세는 재외동포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19세가 되면 강제추방 될 수 있다.

부모와 함께 한국에서 어릴 때부터 살고 이제는 부모보다 한국어와 문화에 익숙하지만 추방되지 않으려면 성인이 되면 3개월마다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해외를 오가야 한다. 박 장로가 깊이 염려하고 있는 부분이다.

“광주는 전국 최초로 고려인지원조례를 만들었어요. 문제는 상위 법률이 없습니다. 사할린동포지원법은 있지만 고려인 지원 특별법이 개정되지 않아서 출국조치 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 장로는 그래서 고려인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강조하기도 한다. 대학에 진학한다면 학생비자를 받을 수 있어 장기체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위해 고려인동행위원회의 향후 역할이 중요하다. 박 장로는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고려인을 소개하고 소중한 일에 동참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그런 노력에 대해 우즈베키스탄 정부 차원도 깊은 관심을 나타낸 바 있다.

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 노동부장관과 교육부장관이 대통령 국빈 방문에 앞서 광주 고려인마을을 방문했다. 자국 국민이었던 고려인들의 삶을 돌아봄과 동시에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경제협력을 위한 공통분모가 고려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즈벡 한국노동사무소까지 광주에 설치됐다.

박 장로는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맺을 민간외교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독립투사의 후손인 고려인들이 정당한 평가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무엇보다 동포적 관점에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인창 기자  tackle21@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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