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갈래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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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갈래 길에서
  • 정성진 목사
  • 승인 2018.03.3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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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

지정학적으로 ‘저주’라 불리는 한반도를 살아가는 한국은 외교에 있어서 운명적 결정이 유난히 많다. 그래서 외교적 결정을 할 때 프로스트가 쓴 ‘가지 않는 길(the road no take)’이떠오른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오늘 우리는 그런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한반도엔 전쟁 위기설이 맴돌았는데 지금은 대화와 화해의 장을 맞이하게 되었다. 

황태덕장이 있었던 세찬 언덕바람의 혹한을 고스란히 받아내었고,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을 야기한 평창 동계올림픽은 평화올림픽으로서 평화의 온기를 고스란히 전 세계인들에게 전해주었다. 운영위원들이나 자원봉사자, 선수들의 수고가 삼박자를 잘 이뤘지만 무엇보다 환경과 날씨를 주관하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외쳤던 ‘베를린 선언’이나 ‘한반도 운전자론’은 내외적으로 냉소적 평가를 받아왔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묵묵히 견지해왔기에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 기적처럼 다가온 한반도 평화라는 역사적인 기회 앞에 우리는 다시 두 갈래의 길 앞에 서있다. 하나의 길은 이미 가본 길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길, 그러나 이 길은 북한에게 이용당하고 말았다는 오판과 맹목이라는 비판이 내재되어있다. 군사옵션을 언급하는 강경파는 물론이고, 상당수의 대화론 자들도 정상회담의 결론이 나기까진 불신, 이후에도 반신반의에 머무른다.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냉소적 시선은, 이 길을 걷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물론 협상만 가본 길이겠는가? 한반도의 핵문제가 대두된 이래 30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대화, 협상, 경제지원이라는 온건한 방법은 물론, 압박이나 제재라는 강경한 방법까지 동원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어느 길이든 충족시켜주진 못했다고 해서 못갈 이유는 없는 길들이다. 가본 길이라도 못 갈 이유가 없는 것이 걸려 넘어진 자리를 알기에 피해갈 수 있으니 성공확률은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을 선택한 자의 확고한 의지와 신념, 마음 자세일 것이다.

과거의 길은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길이었다면, 이번 길은 좀 다르다. 하나는 두 정상이 만나는 회담에서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맞교환하는 빅딜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두 정상이 합의하기 위해 장애물을 조심스레 하나하나 제거해야 했지만 지금은 장애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지난 몇 년간 위촉즉발의 상황을 겪은 후, 겨우 붙잡은 마지막 기회라는 절실함이 모든 국가가 절감하고 있다. 

어떤 길로 선택할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그러나 가본 길이나, 가보지 않은 길든 그 선택에 후회 없길 바란다. 무엇보다 평화의 사도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선포하신 평화를 마음에 품고, 진정성 있는 걸음을 가게 되길 우리 모두가 응원해야 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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