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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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그 이후
  • 송용현 목사
  • 승인 2018.03.30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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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현 목사/안성중앙교회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이냐’하는 글이 있습니다. “가장 강한 것은 돌이다. 그러나 돌을 깨뜨리는 것은 쇠다. 쇠를 녹이는 것은 불이다. 불을 끄는 것은 물이다. 물은 구름에 흡수되어 버린다. 구름은 바람에 날려간다. 바람은 사람을 어찌하지 못한다. 사람은 죽음을 향해서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런고로 죽음이 가장 강하다. 그러나 죽음보다 강한 것은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죽음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이고, 고난은 복음의 방식입니다. 십자가를 무시하는 복음은 가짜 복음이고, 고난을 무시하는 삶은 복음적인 삶이 아닙니다. ‘복음’의 핵심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의 계절은 봄과 함께 다가옵니다. 봄의 환희는 한 겨울의 모진 풍상과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을 맞이하는 것처럼 부활의 환희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부활절을 지나면서 십자가와 부활사건의 관계성을 살펴봄도 중요합니다.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 까지는’에 나오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은 모순어법(oxymoron)을 포함한 역설적 표현입니다. ‘봄’은 모란이 지기 때문에 슬픈 시간이지만, 또한 모란이 피기 때문에 기쁜 시간이기도 합니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이러한 상황을 나타내기 위해 역설적인 표현이 사용된 것입니다.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는 ‘‘절망적 슬픔’이 아니라 미래의 꿈을 잉태한 슬픔, 즉 아름다운 정서로 승화된 슬픔임을 모순어법을 통해 잘 드러내는 것처럼 부활은 고난의 십자가와 더불어서 빛난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게 요구되는 질문은 부활의 사건이 위대하고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확증된 사건이지만 우리에게는 부활사건 자체보다도 그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영어 표현에 ‘So What?’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래 어쩌라구”란 말인데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이 ‘쏘우 왓?’으로 다가와선 안 될 것입니다.

‘정관정요’란 책에는 “창업이 더 중요한가? 수성이 더 중요한가?”라는 유명한 문답이 있습니다. 어느 날 당(唐)태종이 측근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창업과 수성은 어느 쪽이 더 어렵소?”라고 하문했던 바, 창업의 공신으로서 당시 재상의 자리에 있었던 방현령이 아뢰었다. “예, 폐하. 창업이 더 어렵나이다.” 그러자 측근 중 최측근 이었던 위징은 이렇게 반론을 폈다. “아니옵니다, 폐하. 수성이 더욱 어렵사옵니다.” 두 중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던 태종은 “두 사람의 말에는 각각 그럴 만한 이유가 있소이다. 그러나 창업의 어려움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소. 앞으로는 그대들과 짐이 함께 마음을 다하여 수성의 어려움을 넘기도록 합시다.”라는 일화가 있습니다. 부활의 사건은 과거의 사건으로 치부되어서도 아니 될 뿐만 아니라 부활의 사건을 통해 오늘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지켜가야 하는 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부활 그 이후, 수성(守城)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 봄이 왔기에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었기에 봄이 온 것처럼 날마다 새로운 은혜의 새싹들이 움돋고, 믿음의 가지들을 뻗어내며 신앙의 잎사귀와 꽃들을 피워내므로 부활의 능력이 이 땅과 교회위에 공의와 진실로 아름답게 열매 맺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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