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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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8.03.28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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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특집//생명의 현장-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 박스 센터'

버려지는 아기들의 마지막 보루, 거쳐 간 아기만 1300여 명
유기 조장하는 곳 아닌 예방하는 곳, 생명 살리는 데 초점

▲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베이비 박스를 시작한 이종락 목사. 10여 년 전, 이 목사의 집앞에 놓여진 한 장애 아기가 베이비 박스 사역의 계기가 됐다.(사진제공:주사랑공동체교회)

부활절이면 삶은 달걀을 형형색색의 띠로 장식하며 서로 예쁜 것을 갖겠다고 실랑이하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껍질을 깨고 나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달걀이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한다던 목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활절은 새로운 생명의 날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고 죽으신지 3일 만에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날이자, 죄와 함께 죽었던 우리도 주님의 부활과 함께 생명을 얻었음을 기뻐하는 날이다.

부활절을 약 1주일 앞둔 지난 22일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담임:이종락 목사)를 찾았다.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유기 영아를 보호하는 상자, ‘베이비 박스’로 잘 알려진 곳이다. 주로 아이를 낳은 것을 알릴 수 없거나 키울 여력이 안 되는 미혼모들이 이곳에 아기를 놓고 돌아간다.

베이비 박스가 없었다면 좁고 으슥한 골목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차갑게 식어갔을지도 모를 아기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부활의 의미를 묵상하며 버려진 아기들이 제2의 생명을 얻는 베이비 박스 현장을 방문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주님과 함께 우리도 새 생명을 얻은 부활절, 생명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묻고 싶었다.

“아기, 버리지 말고 이곳으로 오세요”
버스를 타고 난곡보건소에서 내려 골목 오르막길을 한참 올랐다.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이마에 땀이 맺히려 할 즈음 주사랑공동체교회 간판과 베이비 박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갓 태어난 아기와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이 언덕을 올랐을까. 교회 외벽에 적힌 ‘장애로 태어난 아기와 미혼모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베이비룸에 데려다 주세요’란 문구를 보자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주사랑공동체교회 담임 이종락 목사가 베이비 박스를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품은 것은 2007년부터였다. 그해 5월 몹시 추웠던 이른 새벽 한 장애아기가 생선 상자에 담겨진 채 이 목사의 집 앞에 버려져 있었다. 이 목사가 장애가 있는 아들을 극진히 돌본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부모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교회 외벽을 뚫어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아기가 추위에 떨지 않도록 온도 조절 장치를 설치하고, 두고 간 즉시 알 수 있도록 알림 장치도 만들었다. 2009년 12월 시작된 베이비 박스를 거쳐 간 아기들은 벌써 1350명에 이른다.

▲ 이곳에 온 아기는 3~4일 정도 보호되다 국가기관으로 인도된다. 친모가 출생신고를 마쳤다면 입양 절차를 밟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입양의 길조차 불투명하다.

기자가 방문했던 날도 아기들을 위한 베이비 룸에 1350번 째 아기가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푹신한 이불에 둘러싸인 아기의 얼굴은 평화롭기만 하다. 아기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천사 같은 아기의 얼굴을 보며 괜스레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보통 베이비 박스에는 인적이 잦아드는 밤이나 새벽에 몰래 찾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예전에는 그런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요즘은 밤낮 가리지 않고 아기를 낳자마자 품고 온다. 2014년 부목사로 부임해 베이비 박스 센터장으로 섬기는 조태승 목사는 엄마들을 만나고 상담하며 안타까운 사례들을 많이 접한다.

“너무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 아기를 데리고 올 때 마음이 아프죠. 중학생 아이들은 누구에게 말도 못한 채 출산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이 아기를 낳고 와요. 그보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은 한 번 만났던 여성을 다시 만났을 때에요.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권면하고 기도했는데 1년 후에 다시 아이를 낳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모든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아기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특히 마음이 어려운 것은 심한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버릴 때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는 다른 아기에 비해 더 쉽게 버려진다. 교회는 장애 아이들이 많아지자 지난 2015년부터 장애 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시흥동으로 분리해 옮겼다.

“장애를 갖고 있는 것도 그 아이에게는 가슴 아픈 일인데 부모에게까지 버림을 받는다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부모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기에 당황스러운 것은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다른 일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을 텐데 우리는 장애 아이 때문에 부모 자신이 평생 불행해질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생명의 가치다. 조 목사는 하나님이 우리 생명의 공급자가 되심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육적인 생명과 영적인 새 생명을 공급받은 크리스천이라면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의 가치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생명만큼 중요한 것이 없잖아요. 그런데 그 귀한 생명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지킬 수 없는 중증 장애인들이 있어요. 또 누군가의 돌봄이 없이는 잠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갓난아이들도 있고요. 이들이 예수님이 돌보라고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들이 아닐까요. 세상은 밝고 유쾌한 것만 보고 싶어 할 테지만, 하나님께 부활의 생명을 공급받은 크리스천이라면 죽음의 위기에 있는 이들을 지키고 살려야 하지 않을까요.”

▲ 주사랑공동체교회 외벽에 위치한 베이비 박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쓰인 시편 말씀이 눈에 띈다.

말 못하는 자를 위하여 입을 열라
베이비 박스는 미혼모는 물론 결혼한 부부, 심지어 부적절한 관계일지라도 아기가 버려진다면 조건을 따지지 않고 생명을 살린다. 이 때문에 베이비 박스가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조태승 목사는 비판을 이해하지만 아기가 자라나는 환경 역시 고려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이를 받아주니까 쉽게 포기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부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봅시다. 아기를 유기하거나 맡길 곳이 한 군데도 없어서 억지로 아기를 기른다면 과연 그 아기가 사랑받으며 자라날까요. 모성애를 뛰어넘는 학대를 보여주는 엄마들도 생각보다 많아요.”

베이비 박스를 찾는 엄마 중 몇몇은 역한 담배 냄새에 찌든 채로 신생아를 안고 오기도 한다. 씻기지도, 먹이지도 않고 며칠을 방치하고 있다가 뒤늦게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 케이스를 만날 때면 아기와 엄마를 빨리 분리시키는 것이 아기를 위한 길이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한다.

무엇보다 베이비 박스는 아기 엄마와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몰래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털어놓고 도움을 구할 곳이 없다. 그렇다보니 극단적인 선택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런 엄마들에게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일단 와서 함께 이야기해보자’고 말한다.

요즘은 아기를 버리고 간 엄마들 중 90% 이상이 상담을 받고 돌아간다. 베이비 박스 센터의 조승태 목사와 상담원들은 먼저 아기 엄마의 상황을 들어준다. 아기를 버릴 수밖에 없다는 상황을 모두 듣고 무슨 선택을 하든 수용해준다. 하지만 한 가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절대 빼놓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를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갓난아기의 입장이다.

“부모는 자신이 아기를 키우지 못해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말 못하는 아기의 입장은 누가 대변해줍니까. 어쩌면 가장 고려돼야 할 아기의 입장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배제돼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우리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아기의 입장에서 엄마들에게 얘기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엄마들에게는 우리가 도울 테니 아기를 키워보라고 설득해요. 이곳은 영아유기를 조장하는 곳이 아니라 예방하는 곳입니다.”

이곳에 찾아오는 엄마들 중 15% 정도는 아기를 데리고 돌아간다. 베이비 박스 센터는 이들을 위해 3년 동안 분유와 기저귀, 아이의 옷과 병원비까지 지원한다. 이렇게 지원하는 미혼모 가정만 한 번에 5~60가정 정도다.

“한국교회가 말 못하는 아기와 고독한 장애인을 위해 더 크게 입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갓난아기와 장애인을 돌보는 일은 단순히 생명을 살리는 일을 넘어, 우리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들의 영혼까지 살리는 일입니다. 올해 부활절, 다시 사신 주님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듯이 우리도 어떻게 지극히 작은 자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을지 고민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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