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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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 안양=손동준 기자
  • 승인 2018.03.2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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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을 소망하는 사람들…안양 호스피스선교회
▲ 안양호스피스선교회가 활동하는 안양 메트로병원 5층 호스피스병동에서는 매일 오전 10시 30분 예배가 드려진다. 환자들의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예배이기에 언제나 가장 핵심적인 복음이 선포된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 부활을 향한 간절한 소망 넘쳐
섣부른 희망보다 영원한 세상 전하며 말씀으로 위로하는 곳

“아이고. 어젯밤 사이에 세 분이나 돌아가셨네.” 호스피스병동의 아침은 지난 밤 숨을 거둔 환우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망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 속에 묻어나는 감정은 너무 깊은 슬픔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무미건조하다고 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오간다. 어쩌면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곳, 그렇지만 부활에 대한 소망 없이는 한없이 괴롭고 슬프기만 할 장소가 여기 말고 또 있을까. 
 

두려움을 천국으로 바꾸는 곳

안양호스피스선교회(회장:김승주 목사)가 활동하는 안양 메트로병원 5층 호스피스병동은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과 봉사자들로 365일 분주하다. 많은 날에는 지난밤처럼 하루 사이에 3명의 임종을 치르는 곳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분한 분위기가 감돈다.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들어오는 마지막 관문으로 여겨지다 보니 통증을 완화하는데 치료가 집중돼 있다. 투여 받은 약물 때문인지 병실마다 환자 대부분은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다. 

그 사이 분홍색 가운을 걸친 봉사자들은 투입에 앞서 사무실에 모여 선교회 권경란 실장의 브리핑을 듣는다. 그리고 기도로 봉사를 시작한다. 
“하나님 부활의 주님, 소망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환자들이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해주십시오. 무엇보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내는 시간이 천국을 경험하는 시간 되도록 해주시고, 섬기는 우리에게서 겸손한 모습이 나타나도록 해주십시오. 환우들의 마음이 평안하도록 해주시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기도가 끝나고 6명의 봉사자가 구호를 제창한다. “나는 한 사람의 영혼을 사랑함에 있어서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

봉사자들은 주로 환자의 발을 주무르거나 깨어 있는 이들의 머리를 깎아주거나 몸을 씻겨준다. 무엇보다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은 호스피스 봉사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다.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들에게도 봉사자들은 다정하게 위로를 건넨다. 16명 환자들의 종교가 제각각인 만큼 노골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는 없다. 다만 섬김을 통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지난해 말 12주 교육을 마치고 봉사를 시작했다는 김인수 씨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환우들의 발을 정성껏 만져드릴 때 그 곳은 사랑이 가득한 삶의 예배자리가 된다”고 봉사의 기쁨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삶의 끝자락에 와 있는 분들의 다양한 연령대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죽음 앞에서 나이의 많고 적음이 없다. 지난주 섬겼던 분들이 일주일이 지나면 계시지 않기도 하다”며 “하나님이 부르시면 지체 없이 떠나 가야하는 곳이 호스피스 현장”이라고 설명했다.
 

365일 선포되는 부활의 소망

이곳에서는 매일 오전 10시 30분 빠짐없이 예배를 드린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선교회 회장 김승주 목사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관념적인 사랑을 넘어 독생자를 보내주심으로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을 한 가지만 이야기하라고 하면 바로 부활입니다. 죽은 상태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길 멸망치 않게 하려고 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죽어야하나요. 고린도전서 15장을 보면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나옵니다. 썩어질 몸으로는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편치 않지만 신령한 몸으로 다시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절차인 것입니다. 소망이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예배가 드려지는 병실에는 4명의 환자들이 있었다. 모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거나 탄식하듯 “아멘”하고 설교에 화답하고 있었다. 다른 병실에서도 예배가 동시에 드려졌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병실마다 마련된 스크린으로 예배 실황이 중계된다. 

“주님 예수 다시 올 때 그대는 영접할 예복이 있는가. 그대 몸은 거룩한 곳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됐는가. 샘물같이 솟아나는 보혈로 눈보다 더 희게 씻으라.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찬송가 259장을 부르는데 우측 병상에 누워 있는 아흔 살 김00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교회 권사로 한평생 신앙생활을 했다는 김 할머니는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됐느냐는 찬양의 가사가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다”며 “남은 시간동안 준비를 잘 해서 거룩한 예복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20년째 호스피스 사역을 하고 있는 김승주 목사는 설교 메시지와 찬양 선택에 늘 고민을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책임한 희망을 제시하기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영원한 세계를 전하는 데 방점을 둔다. 12년간 혈우병을 앓다가 예수님 옷자락만 만지고 나았다는 여인의 이야기는 지난 20년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예화다. 

“우리가 돌보는 대상은 정말 어려운 가운데 있는 분들입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있는 분들이기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들의 형편과 요구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접근해야 하죠. 잘못하면 상처를 주기 십상입니다. 분명한 목표는 이들에게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지난 과거를 잘 정리하도록,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소망으로 바꿔주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으로

김 목사는 기독교 호스피스 봉사의 근거를 ‘선한 사마리아인’에서 찾는다. 그는 기독교 호스피스 봉사와 선한 사마리아인에게서 3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먼저 섬김의 대상이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한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점이다. 김 목사는 “사마리아인이 그랬던 것처럼 호스피스 환자에게 우리는 마지막 사람일 수 있다”며 “오늘도 출근해보니 세 분이 돌아가셨다. 한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가지고 우리의 섬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환자가 있다. 교사 출신의 여성 환자였는데, 입원 당시에는 매우 냉소적이었다. 그러나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섬김으로 마음을 열었고 매일 예배를 통해 전달되는 말씀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다. 세례까지 베풀기로 한 날 문제가 터졌다. 환자의 딸이 완강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 안된다고 우기던 딸에게 그녀는 “딸아. 너의 마음은 고맙지만 내 운명은 내가 책임질게”라며 예정대로 세례를 받았다. 

“이후 그 환자분은 매우 평안하게 지내시다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던 분의 장례였기에 제가 예식을 집례하게 됐습니다. 그 자리에서 세례를 강하게 반대하던 딸로부터 생각이 짧았다며 너무 감사하다는 눈물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호스피스 사역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사례였습니다.”

지난 10년간 800명이 넘는 환자들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한 봉사자는 “지금도 환자들의 죽음이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면서 “나도 언제든지 저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다시 한 번 하나님과의 관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르게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되는 곳이 호스피스 병동”이라고 말했다. 

한편 안양호스피스선교회는 1998년 6월 22일 의료법인 메트로병원과 안양권 기독교계 인사들의 연합체로 출발했다. 정부에서는 날로 증가하는 말기 암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2015년 7월부터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제도화해 본격적으로 시행했고, 2016년 3월부터는 가정호스피스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안양호스피스선교회는 연 2회 호스피스 전문봉사자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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