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에게 인간은 누구인가(15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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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에게 인간은 누구인가(1536년)
  • 주도홍 교수
  • 승인 2018.03.2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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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홍 교수의 팩트 종교개혁사㉕

1536년 초 비텐베르크대학교 교수 루터는 40조로 인간을 정의했다. 

철학은 인간을 사고하는 이성적 존재(animal rationale)로 규정하지만, 루터는 이 철학적 인간이해를 비판했다. 루터는 전문 40조 중 앞 19조에 이르기까지 과연 이성이 인간의 자기이해와 자기규명에 얼마만큼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과격하리만큼 비판적으로 묻는다. 그런 후 루터는 20조에서 40조에 이르기까지 구원사적인 성경적 이해를 통해, 바울 서신이 말하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를 확신했다. 하나님의 창조와 완성 사이에서 하나님 앞에 선 죄악에 빠진 인간의 상황을 루터는 특징적으로 묘사하였다. 

“철학은 인간의 지혜로서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생물체인 인간을 이성을 입은 실존으로 정의한다. 이는 인간이 실제로 또는 비실제로든지 동물로 규명되는 설명과는 별도이다. 그러나 인간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죽어가는 땅 위의 인간이라는 사실이다.”(1-3조)

루터는 인간이성은 분명히 중요하고, 다른 생명과 신적인 것과 비교할 때도 최상의 것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성은 예술, 의학, 법학 그리고 인간의 지혜와 덕망, 권세와 영광을 위해서도 분명히 필요하다. 이성은 인간을 동물과 구별할 때도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인간이 모든 만물의 주관자가 되어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이성 때문이다.(창1:28) 

“이성은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신적 권세의 하나의 태양이며 하나의 예술이다.”(8조) 아담의 타락 이후에도 하나님은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의 통치를 거두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강하게 확인하였다. 문제는 그 철학, 곧 이성을 신학에 비춰본다면,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철학은 확실히 인간이 추구하는 그 목적의 근원을 모른다. 철학은 인간의 추구가 다름 아닌 땅의 행복이라 말하지만, 그 추구의 근원이 창조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이에 반해 신학은 충만한 지혜를 가지고 완전하고 온전한 인간정의를 제시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몸과 살아있는 영혼으로 이루어져 태초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죄 없이, 번성하며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결코 죽지 않는 존재였다. 그러나 아담 타락 이후 사탄의 권세 아래 놓이는 신세가 되었다.”(21,22조)

그 사탄으로부터의 해방은 하나님의 아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예수를 믿을 때, 영생이 믿는 자에게 선물로 주어진다. 이성은 타락 이후에도 존재하지만, 사탄의 권세 아래 있어, 신학이 보여주는 것과는 다르게 하나님 없이 철학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이 최선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비신학적이며 무식한 생각이다. 인간이 선과 악,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존재라 하는데, 이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죄에 빠진 인간은 의롭게 된다.(롬3:28) 누구든지 인간에 대해 말하려 하는 자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의롭게 된 자이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루터에게 이성은 단지 지나가는 “세상 물건”(고전7:31)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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