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교회, 만나지 않고는 친구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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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교회, 만나지 않고는 친구가 될 수 없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8.03.2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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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위한 교회 역할(하)
▲ WCRC가 주최한 한반도 평화·통일 및 발전을 위한 에큐메니칼 포럼이 지난해 7월 12일 열렸다. 이 자리에는 남북한을 비롯한 7개 나라 교회 대표가 참석했다.

4월 말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청와대가 준비 작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가운데, 정상회담 이후 교회 간의 만남도 확대될 조짐이다. 통일 전문가들은 독일 교회의 사례처럼 민간 차원 만남이 효과를 거두려면 정치 논리를 넘는 진정성이 바탕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는 4월 말 남북 정상회담이 예고된 가운데,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세계개혁교회커뮤니온(WCRC)도 북한 조선그리스도교련맹(조그련)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한다.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의 이홍정 총무와 나핵집 목사(화해통일위원장)가 방북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만남은 지난해 열린 WCRC 총회에 참석한 조그련 강명철 위원장의 초대로 이뤄졌는데, 당초 5월로 예정됐던 방북이 남북정상회담 성사 등의 분위기에 맞물려 4월 말로 앞당겨졌다. 

이 자리에서는 남북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논의하고, 북한 교회와 세계  교회와의 연대,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노력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역사적으로 남북 교회의 만남이 정부 간 공식 만남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만남의 효과를 극대화 하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출 예정이다.

남북 교회의 첫 만남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일논의가 답보상태에 머물던 1984년 10월 WCC를 필두로 세계교회가 마중물이 되어 일본 고텐바시 인근 ‘도잔소’에서 회의를 열었다. 여기에는 북측 교회가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통해 세계교회가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해 함께 지지하겠다는 선언이 나왔다. 이른바 ‘도잔소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1986년과 1988년에는 마침내 북한교회와 스위스 글리온에서 2차에 걸친 만남이 이뤄졌다. 현재까지 매년 발표되는 부활절 남북 공동기도문이 이때 시작됐고, 8.15를 기념해 남북교회가 만나 평화통일기도회를 열고 기도문을 발표하는 등 교류가 지속되어 왔다. 

이같은 흐름은 △자주적 통일 △평화통일 △신뢰와 협력을 통한 민족대단결 △민의 참여에 의한 민주적 통일 △인도주의에 기초한 남북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88선언’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노태우 정부 아래 남과 북이 동반자임을 담은 ‘77선언’이 나왔고, 1991년에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다.

WCC의 올라프 픽세 트베이트 총무는 지난 5~7일 한국에서 열린 ‘한국교회 88선언 30주년 기념 국제협의회’ 주제강연문을 통해 “WCC 총무로서 1980년대 중반 WCC가 북한 기독교인들과의 만남을 중개함으로써 88선언을 위한 장을 마련하고 남측 국가적 차원의 주도권을 설정했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트베이트 총무는 “30년이 지난 지금, 88선언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88선언이 그 역사적, 사회적 맥락 안에서 얼마나 예언자적이고 용감한 선언이었는지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에큐메니칼 기관들은 변화하는 정치 환경과 접근 방식에 대응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희망의 지평을 열어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교회 간 만남에는 한계도 있었다. 만남 자체가 중요한 과제가 되면서 상대방의 체재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 제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도 북한의 핵 개발과 3대 세습, 주민들의 인권 등의 문제에 대해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는 침묵을 지켜왔다. 교회협 화해통일위원장 나핵집 목사는 “남북 분단 상황 속에서 상대를 비난하면서 대화는 할 수 없다”며 “분단에서 비롯된 상처는 남과 북 모두 크다. 우리만 상처가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런 부분을 서로 이해하면서 상생의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라고 해명했다.

평통연대 사무총장 윤은주 박사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윤 박사는 독일교회의 사례를 들면서 “사회주의 체재가 성경에 반할 수 있지만, 대화하는 입장에서 그것을 공론화하기는 어렵다”며 “사회주의 속에 존재하는 교회의 특수상황을 양해해줄 필요도 있다”고 거들었다. 더 나아가 “신앙공동체로서만이 아니라 시민운동의 장으로서 통일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었던 독일교회처럼 진정성 있는 교회다운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대화 통로를 조그련으로 한정하지 말고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민경련(민족경제협력연합회) 등 여러 채널을 가동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윤은주 박사는 “한국교회가 접촉 통로를 다양화해서 단절되기 이전의 대북지원의 맥락을 따라 사업을 재개하면 진보적인 교회부터 보수적인 교회까지 다함께 북한 개방과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신대학교 이기호 교수(정도교양대학)는 “문제는 의지”라며 “이번 평창 올림픽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일깨우고 있다. 무엇보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적대적 관계를 친구로 만들고 평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특히 “친구가 되려면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잠깐 만나서 친구가 되기 힘들지만 만나지 않고는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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