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번제는 성경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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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번제는 성경적인가요?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8.03.2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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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봅시다]너무 많은 헌금봉투… 일천번제 본래 목적은 ‘이웃’

“일천번제 재단을 쌓고 있는데 사정이 생겨서 교회를 옮기게 됐어요. 옮겨간 교회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하나요? 또 옮겨서 재단을 쌓으면 하나님의 벌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찌해야 하나요.”

황당한 내용이지만 실화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일천번제’를 치고 검색해보면 비슷한 내용이 검색결과로 나온다. 일천번제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혹여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걸까. 그 두려움은 성경적으로 올바른 것일까. 생각해볼 일이다. 

직업상 여러 교회로 취재를 다니게 되는데, 종종 ‘일천번제’라는 이름이 적힌 헌금봉투를 발견하게 된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형 교회에서도 일천번제 헌금을 운용하고 있어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일부 교회에서는 성도들 스스로가 봉투에 일련번호를 적어 ‘1000회’를 달성할 때까지 이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교회에서 별도의 ‘일천번제’라는 헌금을 운용하지 않음에도 말이다. 오죽이나 간절했으면 그랬을까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천번제를 드리는 마음 한편에 하나님을 헌금의 금액이나 드리는 이의 정성에 비례해 응답하시는 분으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아함을 멈출 수 없다.

‘일천번제’라는 이름으로 드려지는 헌금에는 반드시 간절한 기도제목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기도제목의 대부분이 본인의 건강이나 자녀의 학업, 취업 등에 국한된다는 점은 신앙인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김근주 교수(구약학)는 일천번제를 드리는 목적이 자기 가족이나 스스로의 기도제목에 쏠리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열왕기상 3장에서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배경을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뒤 재판을 요청하는 백성들을 바라보며 백성들의 억울한 형편과 처지를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것이 일천번제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즉 ‘일천번제’의 원래 목적이 나의 유익이 아니라 이웃을 향해야하는데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다. 김 교수는 “‘칼뱅의 후예’를 자청하는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구약에 등장하는 ‘일천번제’의 개념을 가져다 쓰면서 정작 ‘희년’이나 ‘안식년’ 등 정작 필요한 것들은 고려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천번제’라는 용어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건강한작은교회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진오 목사는 “일천번제는 없다”고 단언하면서 “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의 ‘번’은 숫자가 아니라 제물을 태워서 드리는 번제를 가리킨다. 한자로는 태울 번(燔)”이라며 “일천 번 제사를 드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천 마리 제물을 한 번에 드렸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솔로몬이 왕이라서 가능한 이야기였으며, 자신만이 아니라 민족을 대표하는 왕으로서 드린 제물이자 제사였다.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한 후에 봉헌식을 열면서 소를 2만 2천 마리, 양을 12만 마리나 한 번에 화목제 제물로 드리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각에서는 ‘일천번제’를 비롯해 한국교회에 존재하는 헌금봉투의 종류가 너무 많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십일조와 주일헌금, 감사헌금 외에도 건축헌금, 교역자 자녀 학자금 헌금, 장학헌금, 국내선교헌금, 해외선교헌금, 구역헌금, 출생헌금, 순산헌금, 새차구입헌금, 방송선교헌금, 비전헌금 등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어떤 매체에서는 한국교회의 헌금 종류를 85가지로 분류하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형교회 목회자는 “헌금의 종류가 많은 것은 자칫 성도들에게 많은 돈을 내라고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며 “헌금 사용에 대한 원칙을 잘 세우고 십일조에 대한 교육만 잘 진행돼도 교회가 대내외 사업을 건강하게 진행하는데 전혀 부족하지 않다. 헌금의 종류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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