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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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언가?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8.03.2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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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㊶
▲ 두초 디 부오닌세냐. 산에서 예수님의 유혹. 1308-1311년.

*에베소서 6:10-17> ... ...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며칠 전, 모임에 나갔다가 일흔이 넘으신 작가 한 분의 하소연을 듣게 되었다. “나는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동네 뒷산에 산책 겸 운동하러 가지. 그런데 하루는 산에서 내려와 큰 골목길을 걷는데, 초등학교 5, 6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마주 걸어오는 거야. 그런데 그 여자 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홱 돌아서서 도망치듯 뛰어가는 게 아니겠어. 기가 막혀서... 완전 무슨 범인 취급하는 거야.”

그러자. 이번엔 중년의 출판사 사장이 말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탈 때 같은 라인 주민이라 얼굴을 자주 보기에 인사를 하면 대부분 경계부터 해요. 그런 현상이 젊은 애들한테 심해서 들여다보는 핸드폰한테 경배를 하는 양 하면서 옆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죠.”

그때부터 여기저기서 하소연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세상풍조에 대해 한바탕 비판과 한숨을 쏟아낸 다음, 조언이 나왔다. 별 것은 아니었다. “나이 들수록, 남자일수록 밝은 색 옷을 입고, 단정한 차림을 해야 한다.” “여성에게는 절대 아는 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웃 사이에도 극히 필요한 일 외에는 방문도, 아는 체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다들 무얼 그리 두려워하고 경계하는지... ... 그러니까 아예 나는 사람을 안 쳐다보고 사는 연습을 한다.” 식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그들의 한탄이 과장된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또는 모르는 사람의 공격으로 목숨까지 잃는 일이 자주 발생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기에 사회는 점점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짓눌려 몸을 사리고, 마음을 구부린다. 두 눈은 오직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무제한으로 보여주는 스마트폰 안으로 향한다. 그 안에서는 어떤 공격도 받지 않는다고 안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두려워하고, 공격에 대해 방비를 단단히 하고 정신을 차려야 할 대상을 아예 모르거나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이미 넋다운 된 상태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하지만 우리들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공격,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눌리거나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이웃과 친해지는 게 감당이 안 되어 대문을 쾅 닫는다. 그러고 살기에 이사하거나 죽는 날까지 전도 한번 못한다. 

전도의 목적으로라도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끈질기게 환한 얼굴로 인사해야지, 라는 야무진 목표가 없기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멍하니 광고판만 쳐다본다. 

영혼구원을 위해서 자주 가는 다양한 상점의 주인들에게 친절한 이야기를 건네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다. 

일터에서도 복음전달을 위해 일상의 희비를 나누는 일은 눈치없는 일이라 간주하고 아예 입을 닫는다.

그러면서 기독인이라 하는 우리들조차 세상이 두려워하라고 말해주는 것들을 두려워하기에 급급하다. ‘불시의 고통에서 살아남으려면 보험을 들라, 비참한 노후가 되지 않으려면 주식을 투자하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자식을 만들려면 유학을 시켜라, 구차한 가정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자동차를 사라, 쓸모없는 노인 취급받지 않으려면 이것을 먹어라,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이 옷을 입어라, 얼굴에 이것을 발라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뤚??’ 라는 세상 주문에 점점 빠져들어간다.
그러기에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나 자신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 대신에 세상의 두려움에 노예가 되어가는 것. 또 하나는 그 바람에 전도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그 기회마저 잃어버리는 것.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며 사는 지혜로운 기독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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