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권의 문화칼럼]‘네 신을 벗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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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문화칼럼]‘네 신을 벗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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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1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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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갓난아이 때 강에 버려지고, 공주의 손에서 자라며 부귀영화를 누리고, 분노를 참지 못해 살인을 하고, 도망자 신세가 된 사람! 그에게도 마침내 하나님께서 “너의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지시하셨다.

모세가 태어나 버려지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던 그 애굽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현장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은 고사하고 내 이웃, 아니 내 부모 형제나 처자식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한 채 자기 주장대로 살아가고 있다. 선악과를 따먹던 그날부터, 동생을 죽인 가인이나 홍수로 멸하기 전의 사람들처럼, 그리고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가 가지고 있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미련 등등 두말 할 것 없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다. 아니 바로 교만과 위선으로 살고 있는 내 자화상이다.

사순절 기간이다. 그리고 좀 있으면 고난주간이다. 필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 하신 말씀조차 내 편리한대로 해석하고 습관대로 살아왔다. 따라서 때때로 영웅들이나 의인들을 흉내도 냈다. 그러니 갈수록 위선의 덮개를 덮고 또 덮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진정으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온 것이다. 내 언행심사로 인한 결과에 따른 응징과 처벌을 고난으로 착각하며 너스레를 떨었던 것이다.

소개하는 작품은 올 1월에 목원대학교 미술관에서 ‘성경을 먹자’라는 제목의 개인전 중의 한 장면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성경 500권을 채집하여 묶고 박제한 것을 설치한 작업이다. 바로 이 ‘성경을 먹자’ 전시 기간 중 어느 날, 전시장에서, 문득 군화를 그린 고호의 작품이 떠올랐다. 그리고 모세에게 지시하신 출애굽기 3장 5절의 말씀이 스쳤다.

얼른 신을 벗어 설치하고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동안 필자의 삶은 욕망과 위선, 무지와 교만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던 것이다. 모세에게 명하신 이 말씀은 지금도 이렇게 교만과 위선으로 살고 있는 필자에게 하신 명령인 것이다. 내 이웃은 고사하고 내 가족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필자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길은 없으나 이제 내 신을 벗어야 된다는 것을 명받았으니 따를 수밖에 없겠다.

▲ '네 신을 벗으라' 가변 설치, 허진권 작(2018).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구레넷 사람 시몬처럼 내 신을 벗으라 하셨으니 말씀에 순종하여 벗어보자. 그동안 덮고 또 덮었던 수많은 덮개를 벗어보자. 그리고 그 다음은 모두 주님께 맡기며 살아보자. 이제는 거룩한 곳으로 가야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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