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예산 아끼면서 ‘솔리스트’ 투자는 팍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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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예산 아끼면서 ‘솔리스트’ 투자는 팍팍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8.03.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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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봅시다] 유급 찬양단원, 적정선은?

경기도에 위치한 한 교회는 최근 열린 제직회에서 때 아닌 소란이 일어났다. 교회 내 관현악단이 소속된 음악부에 책정된 예산 때문이었다.

성도 수 1000명 남짓의 중형 교회에서 관현악단을 위해 쓰는 예산이 교육부 4개 부서를 합친 것보다 많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관현악단에 필요한 인원을 교회 자체적으로 충원할 수 없는 상황이라 외부 연주자들을 채용해야 하고, 비록 아르바이트 성격이지만 비용을 다 합치면 그 금액이 무시 못 할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지켜본 몇몇 제직들이 삭감을 요청했지만 당회는 “찬양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이라며 예산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교회의 미래인 교육부 예산은 동결시키면서까지 교회 예배에서 무리하게 관현악단을 운영해야만 하느냐”는 지적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외부에서 온 유급 연주자들의 예배 태도에 대한 문제도 있다. 주일 하루에 두 교회를 나간다는 한 피아노 반주자는 “본 교회에서 1부 예배를 드린 뒤 다른 교회로 이동한다”며 “연주자도 사람이다 보니 본 교회 외에는 일한다는 생각으로 가게 될 때도 있다. 피곤해서 설교시간에 졸기도 하고, 맡은 순서가 끝나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많지는 않지만 더러 비기독교인 전공자가 예배 연주를 하기도 한다. 한 불교매체는 대구 경북지역 전문성악인 불자들로 구성된 중창단 ‘포탈라 솔리스트 앙상블’을 소개하면서 “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교회에도 다닌 경험이 있다”고 적었다.
기존 성도들이 소외되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 겨울, 대학시절 다니던 교회를 모처럼 방문했다. 성탄절을 앞둔 터라 칸타타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성가대의 아름다운 앙상블과 더불어 솔리스트의 수준급 찬양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예배를 마친 뒤 성가대로 섬기는 집사님을 만났는데, 뜻밖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외부에서 온 솔리스트들이 참여함으로써 완성도는 높아졌는지 몰라도, 기존의 찬양대원들은 ‘들러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기존 성가대 안에 전공자는 아니지만 솔리스트를 맡아 오던 이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력’이라는 잣대만 가지고 외부인사를 데려왔어야 하느냐는 이야기였다.

여기 소개된 교회, 소개된 연주자만 해당되는 문제일까. 돈을 주고 외부 인력을 초청하는 것에 대해 딱 잘라서 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정선’을 마련하는 작업은 필요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양평에 위치한 국수교회(담임:김일현 목사)는 바람직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리’단위의 소박한 ‘동네교회’지만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의 탁월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교회는 1995년부터 지역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1998년부터 예배에서 관현악 앙상블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이들부터 키워서 만든 오케스트라이기에 무보수 봉사를 원칙으로 한다.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악기를 배운 아이들 가운데 음악을 전공하고 유학을 가는 사례가 생겨났고, 자기가 배운 것을 다음세대에게 전해주려는 자원봉사자들이 나오게 됐다.

김일현 목사는 ‘적정선’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곤란해 하면서도 나름의 기준을 제시했다. 먼저 연주자들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공자들은 많은 비용을 쓰면서 공부했고, 생업과 관련된 만큼 전공자들의 작은 섬김에 대해 과도하지 않은 선에서 보수를 지급하는 것은 오히려 정당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찬양의 본질은 남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고백”이라며 “스스로의 상향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때그때 돈으로 임기응변식 예배를 꾸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바깥의 인력은 가급적 최소화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또 “사람들을 가르치고 실력이 성장하도록 교회 내에 자체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면서 “교회 내에 음악적 풍토가 만들어지는데 최소 3년 정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찬양의 예배의 중요한 일부다. 그러나 하나님을 고백하지 않는 외부 아르바이트 인력이 기교만으로 성도들에게 은혜를 준다면 이것은 ‘참된 찬양’이 아니다. 예배의 완성도는 성도들의 만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흡족해 하시는가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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