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 아내에게 최후의 편지를 쓰다(15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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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아내에게 최후의 편지를 쓰다(1546년)
  • 주도홍 교수
  • 승인 2018.02.2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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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종교개혁사 ㉑ 주도홍 교수 / 백석대학교 부총장

루터는 긴 여행 중 가족과 친지들이 있는 정든 비텐베르크로 돌아오지 못한 채, 1546년 2월 18일 아이스레벤에서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루터는 이곳에서 아내에게 2월 1일, 6일, 7일, 10일, 14일 다섯 번의 편지를 보냈는데, 14일 편지는 루터가 아내에게 보내는 최후의 편지였다. 루터는 1546년 2월 10일 편지에서 아내를 향해 최상급의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나의 인자하고 사랑하는 아내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평강이 가장 거룩한 부인 박사께 함께 하길 바라오!” 2월 1일 편지에서, 루터는 아이스레벤으로 오는 추운 길에서 무리하여 감기에 걸려 몸이 몹시 좋지 않음을 알린다. 특이한 것은 루터가 독일에 사는 유대인들을 몹시 두려워하는 중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자신을 험담하고 어렵게 할 것이기에 그들을 서둘러 피했다는 것이다. 

유대인을 향한 루터의 거대한 두려움에는 그 근거가 확실하다. 1523년 루터는 중세의 정서와는 차별화된 폭력 없는 유대인 선교와 유대인과 하나 되어 평화롭게 살아야 할 것을 호소했고, 예수님 역시 유대인으로 태어나심을 일깨웠다. 그렇지만 루터는 1525년부터 유대인 선교가 어렵게 되고 종교개혁이 어려워지자 유대인에 대한 입장을 바꾸었다. 결국 루터는 1543년 반유대주의 글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하여”를 세상에 내어놓았다. 이 글에서 루터는 개신교를 지지하는 성주들에게 유대인을 노예로 삼고, 도시에서 추방할 것을 요청했다. 

루터의 반유대주의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믿음을 통한 구원을 강조하는 종교개혁에 배치되는 유대인의 행위구원에 근거하고 있다. 루터는 죽기 전 사흘 동안 반유대주의 설교를 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우리는 그들을 기꺼이 우리의 형제로 여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우리의 원수들이다.” 

생애 끝자락에서 루터는 유대인을 향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추방당할 것인지였다. 루터는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핍박하는 유대인의 생존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1546년 2월 1일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이스레벤에는 50명 이상의 많은 유대인들이 살기에 가능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두려워한다. 

루터는 죽기 4일 전 아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빨리 집에 돌아갔으면 하고 소망한다. 또한 종교개혁을 지지한 두 형제를 기쁨으로 소개한다. 백작 게브하르트와 백작 알브레히트가 비방하기까지 하다 비로소 종교개혁을 지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루터는 기뻐한다. 하나 됨의 상징으로 알브레히트의 아내가 보내온 송어를 아내에게 마지막 선물로 보낸다. 당시 라이프치히와 마그데부르크에서도 떠돌았던 루터가 죽었다는 헛소문이 아이스레벤에서도 있다고 전한다. 이런 저런 여러 풍문도 돌아다니는데, 이에 대해 루터는 일괄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 지를 기다릴 뿐이요. 하나님이 명령하실 것이요! 아멘. 아이스레벤에서 1541년 발렌타인 주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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