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 청소년들, 교회 밖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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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 청소년들, 교회 밖 청소년들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8.02.21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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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㊳
▲ Let the Little Children Come to Me. Carl Christian Vogel von Vogelstein.

*다니엘1:1-3>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지난 주, 진주YMCA에서 강연을 하였다. 나는 요즈음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진주에서 강연을 한다. 그런데 이번 강연에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3학생까지 다양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참석하였다. 진주를 갈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은 전체적으로 보수적이며, 안정적인, 그리고 학구열이 꽤 높은 분위기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도시이다. 하지만 강연 시간 등을 제외한 이동 시간이 일산에서 왕복 진주까지 12시간이 되기에 만만찮다. 그럼에도 수준 높은 강연장 분위기가 흡족해서 진주에서 강연 요청이 오면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주에도 강연을 마치고 급하게 버스터미널로 가려는데 한 여자 분이 나를 잡았다.  

“선생님, 크리스천이시죠? 저의 교회에 와서 청소년들을 위해 강연해주실 수 있나요?”

강연 때에 단 한 마디도 기독교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는데도 내 정체(?)가 드러난 게 너무나 기뻤지만, 한편 의아했다. 전주, 익산, 군산 등을 가면 술집보다 많은 게 교회 십자가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러나 경상도 지역은 신앙 불모지에 온 기분으로 늘 마음이 아팠는데… 교회 청소년을 위해 강연을? 나는 너무 반갑고 기뻐서 무조건 예스! 하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그리고 일산으로 오는 장장 5시간의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렇다. 사실, 내 경력에 비해, 교회 청소년을 대상으로 강연한 사례는 너무도 적다. 그러나 교회 밖 청소년들 앞에서 이러저러 강연을 하는 일은 1년 365일 쉼없이 진행된다. 왜 그럴까? 나야말로 ‘기승전-예수님’의 강연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성경적 가치관을 심어주는 게 소망인데, 그래서 기도도 하지만 교회의 문은 잘 열리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게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크고 작은 교회에서 청소년을 위한 특별 행사를 하면 늘 목회자, 선교사님들의 초청시간이 즐비하다. 예전 시절에 아이들이 교회를 통해 다양한 문화체험을 한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교회가 더 폐쇄적이고,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것 같다. 그래서 교회 청소년들은 ‘가족적인 것’ 외에 모든 것을 세상에서 흡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운전기사 외에는 모두가 잠든 것 같은 조용한 버스 안에서 십대의 소년, 다니엘이 저절로 떠올랐다. 다니엘은 세 친구와 함께 포로가 되었다. 포로는 노예보다 비참한 존재이지만 다니엘과 친구들은 ‘더러운 나라 지배 아래서 살 수 없다’고 자살하지 않았다. ‘적을 한 명이라도 죽이는 게 사명이다’’라며 테러를 감행하지도 않았다.
구원의 역사의 한 길을 통과하는 일개의 순례자처럼 그 환경에 ‘생의 역사’를 치열하게 써나간 것이다. 그래서 몸을 건강하고 정결하게 잘 지켰다. 모든 분야의 학문과 예술 등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습득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도서관벌레처럼 공부하고, 최고 교육과정도 묵묵히 그러나 부지런하고 몰입해서 최우수의 성적을 발휘한 것이다. 율법책만 가슴에 품고, 허구한 날 나라 잃은 민족의 애통함만을 생각하며 비리비리 말라가는 인생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어떠한가? 집과 학교, 학원에서는 오직 입시공부, 교회에서는 오직 성경공부가 전부이다. 그것이 아니면 워십이나 단기선교여행, 정도. 그러다보니 진심으로 자기들의 눈높이에서 다양한 문화예술과 여러 학문의 맛을 볼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예전에 교회에서 문학의 밤 등을 하여 청소년들의 문화갈증과 세상으로 올바르게 나아가는 창구 역할을 한 것처럼 변화가 필요하다. ‘한 손은 교회문을, 한 손은 도서관문’을 여는 아이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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