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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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함에 대하여
  • 이찬용 목사
  • 승인 2018.02.1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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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용 목사의 행복한 목회이야기 ③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난 박완서 선생의 에세이 중에 ‘어른 노릇 사람 노릇’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자. 지금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은 오십 년대의 빈곤과는 댈 것도 아니다. 
 
본격적인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배고픈 설움이 다시 있어서야 되겠는가, 마음만 먹으면 일 년 안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다들 자신하는데, 우리의 진정한 저력은 바로 어려울 때일수록 더 넉넉해지는 마음이 아닐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행복은 국민 소득순도 아니다, 경제가 곤두박질을 치고 그 으스대던 만달러 시대가 졸지에 오천 달러로 줄었다고 지레 불행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흥청망청 쓰는 것보다 알뜰살뜰 쓰는 게 훨씬 더 살맛이 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가난했을 때 오히려 더 품위 있게 살았다. 가난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없었으니까, 형이나 언니가 다니는 학교에 아우가 들어가 그 교복 물려 입는 것은 아우가 으스댈 만한 것이었지 결코 기죽을 일은 아니었다.’
 
“넉넉하다”라는 것은 참 좋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세대에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기란 녹록하지 않아 보입니다. 지난 주 구역장 MT를 강화도로 다녀왔습니다. 가려고 하는데 간식을 주더군요, 그 간식은 청년부가 믿음의 선배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담아 준비한 거라 하구요.
 
이제 중3 졸업을 하는 친구들이 이번 주일 낮 예배를 마치고 강화도 속초로 성인식 여행을 떠납니다. 많을 땐 거의 50여명 정도 되구요, 이번엔 30여명이 조금 넘는 아이들이 갔습니다. 십 수년이 지난 우리 교회의 전통이 되었지만, 맨 처음에는 성인식 여행의 이튿날 아침 함께 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대게를 삶아준 것이 시초가 되었습니다.
 
대게는 사실 너무 비싸서 살아 있는 홍게나 박달게를 사는데, 이른 아침, 대포항에 나가 경매로 막 받은 것을 근처 점포에서 삶아와 아이들에게 먹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름 전통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차츰 많아져서 어떤 땐 백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게를 배불리 먹일 수 있지만, 지금까지 함께 간 어른들이 한결같이 감당해 주셨습니다.
 
초기 중3을 마치고 졸업한 친구들이 이젠 교회의 집사도 되고, 간사도 되어서 섬겨 주고 있습니다. 이젠 교회의 어른들이 잘 다녀오라고 십시일반 모아주는 게 전통이 되어가고 있네요.
 
 “잘 다녀와” 하고 조금씩 모은 돈이지만, 꽤 많은 후원재정이 되기도 하지요. 아이들은 물질에 별 어려움 없이 마음껏 강원도 여행을 다녀오게 됩니다. 훗날 이 아이들이 자라면 또 자기 후배들에게 그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섬기게 될 겁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자라니까요. 언제나 어린 줄만 알았던 친구들이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다녀오고, 결혼을 하고, 아빠 엄마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어느 덧 교회의 중요한 인물로, 목회의 동역자로 어떤 땐 목회자가 기대고 상의하고 싶은 인물로 서 있는 걸 보면 저도 깜짝 놀랄 때가 있거든요.
 
이번에 성인식 여행을 가는 친구들에게 격려의 말과 함께, 미소 그리고 지갑도 열어보이는 신앙공체가 참 귀합니다.                     
                                                        부천성만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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