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분명 예수님의 ‘꽃’처럼 살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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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분명 예수님의 ‘꽃’처럼 살게 될거야”
  • 박경희 작가
  • 승인 2018.02.0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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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 작가의 창간 30주년 기념 동화 (하) / 도라지 꽃이 피면

<지난호에 이어>

“아저씨, 빨리 가요!”
“우리 예화 정말 씩씩하네. 아저씨는 힘이 없어 더는 걸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예화가 아저씨 좀 업고 가라.”

털보아저씨가 농담을 하는 걸 보니 국경선이 가깝긴 한가 봐요. 예화는 발에 바퀴가 달린 것 같았어요. 엄마가 바로 코앞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힘이 났어요. 

“거치적거리는 꼬마 데리고 가지 말라고 했더니 괜한 걱정이구만. 덕분에 이렇게 웃을 수도 있어 좋고. 엄마 만나서 좋겠다. 꼬마는…….”

예화는 꼬마, 꼬마라고 놀리는 말이 싫지 않았어요. 왠지 모두가 가족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어서, 갑시다. 해가 뜨면 중국 공안들이 뜰 수도 있으니까요. 기다리고 계신 선교사님과 일행을 생각해서라도 바삐 움직입시다.”

희뿌연 안개가 앞을 가렸어요. 그래도 사람들은 안개를 뚫고 작은 나무 밑을 향해 달렸어요. 물론 예화도 힘차게 달렸지요. 마치 어른과 아이가 달리기 경주를 하는 것 같았어요.

“환영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유의 땅을 밟고 계십니다.”

나무 밑까지 다다르자 솜사탕 같은 목소리가 들렸어요. 사람들은 젖은 신발을 벗어 던지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지요. 털보 아저씨처럼 인자한 얼굴이었어요. 하지만 예화는 엄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실망했어요. 겁도 났고요.

“우리 엄마는요?”
“네가 예화구나! 엄마한테 말 많이 들었다. 여기는 국경선 접경지대라 위험하단다. 조금 더 가면 엄마 만날 수 있으니 참자. 하나님이 예화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단다.”

예화는 하나님은 또 뭐람?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사람이 털보 아저씨니까 그렇다면 아저씨가 하나님인가? 예화는 도통 무슨 말인지 헷갈렸어요.

“여러분, 모두 힘드시지요? 조금만 더 가면 저희 지하 교회가 나옵니다. 거기까지 어서 이동하시죠. 이곳도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잡히면 영락없이 북송되어야 하는 지대거든요.”

솜사탕 아저씨가 차에 시동을 걸며 재촉했어요. 예화는 차에 오르기 전, 방금 건너 온 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어요.

‘저 곳으로 다시는 돌아 갈 수 없겠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떡하지? 낼 부터 혁이는 누구랑 놀까?’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피고 졌어요. 아침에 피었다 해떨어지면 지는 나팔꽃처럼 말에요. 엄마를 만나는 건 좋지만, 그래도 고향을 떠나 미지의 나라로 가는 건 불안했어요. 그러나 강물은 예화의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잘만 흘러가네요.

“예화가 할머니 생각나서 그러는구나! 근데 지금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어. 중국 공안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지? 어서 차에 타.”

털보 아저씨가 말했어요. 그럴 때의 아저씨는 엄마의 행방을 대라며 할아버지에게 다그치던 보위 대처럼 냉정해 보였어요.  
예화는 차 안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어요. 

‘지금 여기가 이 땅이 엄마를 그리워하던 중국 땅이란 말이지?’

예화는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고개를 내밀고 밖을 내다보았지요. 중국은 정말 땅덩이가 큰 것 같았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밭에 도라지꽃이 끝없이 피어 있으니 말예요. 사람들이 알이 여물기도 전에 캐 먹어서 도라지꽃을 보기 힘든 북한과는 달랐어요. 불현듯 혁이 생각이 더욱 났어요. 엄마만 아니라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아저씨, 진짜 우리 엄마 만날 수 있어요? “
“그럼. 진짜지. 집사님이 널 위해 얼마나 기도 많이 하고 계신데…….지금도 아마 열심히 기도하고 계실 걸.”

예화는 왜 엄마를 ‘집사님’ 이라고 하는 지 이해가 안 되지만, 아무튼 엄마를 만날 수 있다니 참기로 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솜사탕 아저씨가 차를 멈추었어요. 예화는 북한과는 전혀 다른 집이 영 낯설었어요. 예화는 엄마가 있나 싶어 사방을 두리번거렸지요. 
그런데, 그런데, 바로 앞에서 꿈에 그리던 엄마가 양팔을 벌리고 예화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예화야!”
“엄마!”

엄마가 예화를 꼭 껴안았어요.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엄마에게서 도라지꽃 향기가 났어요. 시커멓던 엄마의 얼굴도 감자 가루처럼 뽀얗게 변해 있었어요. 영원히 놓지 않을 것처럼 꼭 껴안던 손길을 푼 엄마가 예화에게 인사를 시켰어요.

“인사 드려. 예화야. 엄마의 생명을 구해 주시고 너까지 이쪽으로 인도하신 목사님과 선교사님이셔. 여기선 공안이 무서워 이 분들을 사장님이라고 한단다. 두 분 아니면 엄마도 너도 절대로 저 강을 건널 수 없었을 거야. 목숨 걸고 도와 주시면서도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고마운 분들이야.”

예화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인사는 했지만, 솔직히 엄마의 말을 전부 이해한 것은 아니었어요. 털보 아저씨와 선교사님이 웃었어요. 그 모습이 햇살처럼 빛났어요.

“별 말씀을요! 그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하신 일입니다. 집사님의 눈물어린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고요.”

선교사님이 엄마의 손을 잡으며 말했어요. 

“엄마, 왜 사람들이 자꾸만 아버지가 인도하셨다고 해?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셨잖아. 수령님을 말하는 거야?”

예화는 동굴에서부터 궁금했던 걸 묻지 않을 수 없었어요.

“호호. 예화야. 아버지는 하나님을 부르는 거란다. 참. 너는 처음 듣는 말이라 잘 모르겠구나. 차차 너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될 거야.”

그러면서 엄마가 웃었어요. 엄마가 웃는 모습이 정말 예뻤어요. 보랏빛 도라지꽃처럼 말예요. 예화는 지금까지 엄마가 저토록 밝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답니다. 
 
“어서 지하 교회로 들어갑시다. 형제, 자매님들을 위한 만찬이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선교사님이 사람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어요. 엄마가 예화의 손을 꼭 잡고 지하로 내려갔어요. 지하 교회는 깨끗하고 아늑했어요. 붉은 십자가도 보였고요. 작은 풍금도 눈에 띄네요. 강을 건너 온 사람들은 들어오자마자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또 중얼거리네요. 당연히 예화는 또 헷갈릴 수밖에요. 

‘이번에는 너무 좋아서 정신이 나갔나?’

예화는 의아한 얼굴로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엄마도 다른 사람들처럼 눈물, 콧물 흘리며 울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거기 다 연신 ‘아버지…….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말이에요.
예화는 중국에서 라오스를 거쳐 남한에 도착했어요. 지금은 엄마를 따라 동네 예배당에 나가고 있어요. 

“너는 분명 ‘예수님의 꽃’처럼 살게 될 거야.“

엄마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선지 예화도 왠지 예수님이 좋아졌어요. 보이지는 않지만, 따스한 손으로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다는 말이 믿어지기도 하고요. 예화는 엄마처럼 지금부터 간절히 기도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예수님. 내년 도라지 꽃이 피면 할아버지, 할머니도 남한에서 같이 살게 해 주세요! 내 친구 혁이도요. 꼬옥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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