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4백자 원고지는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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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4백자 원고지는 어떻게 됐을까?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8.02.01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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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주년 특별기획] 기독교연합신문 제작 변천사

누런 4백자 원고지는 어디서건 펼쳐 켤 수 있는 노트북 컴퓨터가 됐고, 커다랗고 무거운 데다 24장 혹은 36장면을 촬영하면 끝이었던 필름 카메라는 수백, 수천 장을 찍어도 끄떡없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디지털 카메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스마트폰 하나면 언제 어느 환경에서도 뉴스를 볼 수 있게 됐다.

기독교연합신문(발행인: 장종현 목사. 사장: 양병희 목사)이 창간된 1988년 이후 30년이 지나오는 동안의 신문제작 시스템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변하면서 발전됐다. 일상과 시대의 변화와도 그 흐름을 같이 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 이른바 ‘대지바리’로 불리는 수작업 시대와 컴퓨터 조판시대, 현재의 온라인 신문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조금 세분해서 들어가면 컴퓨터 조판 시스템이 보급되던 때에는 쿽 프로그램과 인디자인 편집방식으로 전환됐고, 온라인 신문은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의 급격한 확산과 함께하고 있다.

▲ 수작업인 대지작업으로 신문을 제작했던 1988년 2월 1일자 창간호(왼쪽)와 인디자인으로 작업하는 현재의 신문(오른쪽).

# 수작업에서 전자출판시스템으로

창간 당시의 제작시스템은 거꾸로 각인된 금속활자를 퍼즐 맞추듯이 단어와 문장을 만들고 조판대에 끼워 면을 제작한 후 잉크를 칠해 종이를 얹어 찍어내던 활자조판 방식은 아니었다. 초기 컴퓨터 조판 시스템이 도입됐던 때였는데, 모눈이 촘촘하게 그려진 신문 판형 크기의 두꺼운 대지 위에 기사가 출력된 용지를 일일이 잘라 붙였던 대지작업으로 신문을 제작했다. 인쇄는 대량 인쇄가 가능했던 윤전기가 맡았다.

당시 기자들은 기사를 원고지에 써서 마감했다. 원고지 소비가 많았던 언론사들은 2백자 원고지가 아닌, 주문 제작한 4백자, 8백자, 1천자 원고지 등을 사용했는데, 언론사마다 선호도가 달랐다. 인터뷰나 취재 또한 녹음기나 노트북이 아닌 한 손에 딱 들어가는 크기의 취재수첩에 일일이 기록하는 형태였다. 글씨를 빨리 써야 하는 만큼 속기를 배우는 기자들도 있었고, 악필인 기자들은 본인이 취재하면서 날려 쓴 글을 해독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있었다.

신문 제작은 지금도 그렇지만 화요일에 진행된다.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 신문 배달 방식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배달 사원이 직접 배달하지 않고 우편으로 발송하는 본지의 경우, 늦어도 수요일에는 발송이 돼야 주일 이전에 목회자들이 신문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30년 전 화요일 아침은 기자들의 기사 마감으로 시작됐다. 마감 시점인 데드라인에 맞춰 기자들이 원고지에 작성한 기사를 넘기면 오퍼레이터라고 불리는 직원들이 컴퓨터에 입력했는데, 이것이 얇은 사진 인화지 형태로 출력됐다. 기사 제목과 본문, 사진이 모두 출력되면 흔히 ‘칼잡이’라고 불렸던 조판요원들이 접착성분의 3M 스프레이를 뿌려 두꺼운 대지 위에 일일이 잘라서 붙여 한 면 한 면을 제작했다.

신문은 대판(大版) 크기로 제작됐다. 대판은 전지 2절 크기로, 가로 78.8cm X 세로 55cm이며, 신문 두 면을 펼친 크기인데, 대지는 신문 한 면 크기인 39.4cm X 세로 55cm였다. 이 방식으로 5년 정도 지속됐고, 이후 컴퓨터 조판 시스템을 도입하게 된다.

수작업 시스템 이후 본지는 1993년 12월부터 컴퓨터 편집이 가능한 매킨토시컴퓨터를 도입한다. 당시 신문편집은 ‘쿽 엑스프레스(Quark XPress)’와 ‘서울시스템’이 쌍벽을 이루었는데, 본지는 쿽 엑스프레스를 활용함으로써 ‘전자출판시스템’으로의 발전적인 전환을 꾀했을 뿐 아니라, 기독교계 신문들의 전산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에도 많은 교계 신문들은 수작업에 의존하는 형태였지만, 본지는 전자출판시스템 도입으로 제작 시간을 상당히 앞당길 수 있었다. 쿽 프로그램 편집은 10여 년 이상 지속됐으며, 2012년 인디자인으로 전환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본지는 전자출판시스템의 도입과 함께 당시 일반 언론에서도 실시하지 못했던 ‘전면 가로 쓰기 편집’과 ‘한글 전용 신문’을 제작함으로써 가로 쓰기 신문 확산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 본지가 지난 2005년부터 운영 중인 온라인 신문 '아이굿뉴스'.

# 일일 마감 방식의 ‘온라인 뉴스’

제작 방식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지만, 2005년 종이신문과 별도로 창간된 온라인 신문은 또 한 번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제작방식의 변화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기독교연합신문은 대부분의 교계 언론사들이 홈페이지 운영에 머물러 있던 당시 온라인 신문인 ‘아이굿뉴스’와 ‘아이굿뉴스TV’를 2005년 1월과 2006년 3월에 개국하면서 온라인 언론 시대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종이신문과 온라인신문, 인터넷TV를 운영하는 최초의 교계 언론사가 됐다. 이후 기독 언론들은 앞다투어 오프라인 종이신문과 온라인신문을 함께 운영하는 방식을 도입했고, 실시간 기사 제공이 가능하게 됐다.

온라인신문의 운영으로 기자들은 잔꾀를 부리거나 여유를 즐길 수 없게 됐다. 수작업으로 신문을 제작하던 때는 매주 화요일 데드라인만 지켜 기사를 넘기면 됐지만, 온라인 신문의 활성화는 이 공식을 깼다. 당일 취재한 기사는 당일에, 늦어도 다음 날 오전에는 온라인 상에 노출돼야 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뉴스는 각 언론사에서 부지런한 기자와 그렇지 않은 기자를 확연하게 구분 짓는 악역(?)을 담당했고, 언론사별 혹은 기자 간 속보 전쟁의 서막을 열기도 했다.

온라인 뉴스의 보급으로 일간지들의 경우 조간과 석간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1주일에 한 번, 주간 발행 체제인 교계 신문들은 온라인에서만큼은 일간지 못지 않은 속보성을 유지하게 됐다. 본지 온라인 신문인 아이굿뉴스는 대부분의 기사들이 당일 또는 다음날 온라인 상에 노출돼 다른 교계 언론사 기자는 물론 목회자들이 실시간으로 교계 소식을 접하게 하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뉴스를 빠르게 전하는 것은 좋았지만, 기자들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일은 늘어났다. 취재 시 노트북컴퓨터 휴대는 필수였고, 카메라 또한 꼭 동반해야 했다. 타 언론사 기자들의 경우 취재 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기도 했지만, 본지 기자들은 커피숍 한구석에 틀어박혀 바로 기사를 작성해 본사로 송고했고, 데스크의 OK 사인 후 함께 송고된 사진과 함께 기사를 온라인에 노출시켰다. 지금만 해도 달리는 차 안에서까지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지만, 불과 20년 전, 그리고 초기 온라인신문 운영 때만 해도 별도의 무선 인터넷 수신기를 노트북 컴퓨터에 꽂았다 뺐다 하면서 무한 인내를 시험 받곤 했다.

이런 시스템은 일 주일 주기로 반복됐고, 화요일에는 어김 없이 오프라인 기독교연합신문을 제작했다. 한 가지 일만 하는 타 언론사 기자에 비해 본지 기자들은 1인 2역 혹은 1인 3역의 역할을 감당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돼 있었다.

온라인 아이굿뉴스 창간 1년 뒤인 2006년, 각 교회 목회자들의 설교 방송을 온라인으로 제공했던 ‘아이굿뉴스TV’의 개국 또한 교계 최초였다. 1달여 만에 6만 명 이상이 접속했고, 1년 후인 2008년에는 5배 이상 증가하는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 2012년 개설된 ‘페이스북 기독교연합신문-아이굿뉴스’는 독자들이 찾아보는 뉴스가 아니라, 찾아가는 뉴스 서비스를 제공했다.

# SNS를 위한 페이스북까지

본지는 SNS를 활용한 여론 조성과 기사 제공 서비스에서도 발 빠르게 대처했다. 페이스북이 급격히 확산되던 2012년 개설된 ‘페이스북 기독교연합신문-아이굿뉴스’는 독자들이 찾아보는 뉴스가 아니라 찾아가는 뉴스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동안 특정 언론사의 사이트를 방문하거나 포털 사이트들에서 제공하는 기사를 검색해서 읽는 것이 보편적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독자들을 찾아가는 ‘역발상’의 전환이었다.

페이스북 기독교연합신문-아이굿뉴스의 운영으로 독자들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본지가 제공하는 다양한 기사들을 볼 수 있었고,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온라인과 SNS를 통해 전해지는 더 다양하고 풍성한 콘텐츠를 누릴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지난 30년 동안 기독교연합신문의 제작방식은 확연하게 변했다. 대학생들 또한 뉴스를 접하는 매체가 ‘카카오톡’(52.5%)과 ‘페이스북’(41.5%)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이런 변화에 대해 김춘식 교수(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신문과 방송’ 1월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먼저 기사를 싣고, 이후 종이신문에 게재하는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하고, “종이신문의 기사를 모바일에 맞게 재가공해 AR, VR, 드론, 로봇 등의 신기술을 접목하거나, 언론사와 포털 간의 조인트 벤처도 늘어나는 등 다양한 디지털 포맷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생산하는 경향이 발견된다”면서 디지털로의 전환은 운명적 과제라고까지 표현했다.

기독교연합신문은 지난 30년 동안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면서 기독교 언론을 이끌어왔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주어진 과제인 ‘변화’에 적극 부응하면서 발전적 변화의 모범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는 한국 교회와 독자들을 위한 것이며, 기독교연합신문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독자들을 향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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