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조 발라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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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조 발라 1424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8.01.3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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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르네상스와 인문주의(4)

로렌조 발라(Lorenzo Valla, 1426-1457)는 인문주의 학자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중요한 학자입니다. 그는 라틴어 번역 성경과 각종 교부들의 라틴어 번역이 정당한가를 비판적으로 연구하였습니다.

라틴어의 수사학, 헬라어 문법에 정통했던 로렌조 발라는 교부들이 작성한 초대교회 문서들의 진위를 파악하여 조작된 것임을 밝혀내는 기술을 터득하여, 교부들의 이름으로 성행하던 위작들을 제거하였습니다. 발라는 ‘콘스탄티누스의 헌정서가 거짓됨’(1440)이라는 저술을 통해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헌정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아시아로 수도를 옮기면서 서구 유럽 전체의 통치권과 여러 가지 특권들을 로마 교황에게 헌정하였다는 문서인데, 과연 그 당시에 이런 문서가 작성되었을까하는 의심이 제기되어 왔었습니다. 로렌조 발라는 이 문서에 사용된 용어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에는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밝혀내어 확실하게 위작이라고 폭로하였습니다. 

당시에 그가 이런 연구서를 펴낸 것은 교황 유진 4세가 남부 이탈리아의 왕, 알퐁소 5세(1396-1458)와의 사이에 나폴리 공국의 통치권을 놓고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속 군주에게 유리한 로렌조 발라의 연구가 나오자, 로마 교황청에서는 로렌조 발라를 체포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알퐁소 왕의 궁전에서 숨어 지내면서 대적자들을 피해야만 했고, 법정에 나가서 이단성 여부를 판단 받아야만 했는데, 주변의 비판자들로 인해서 개인적으로는 힘들고 고난에 찬 삶을 살았습니다. 로렌조 발라는 1447년 2월에 교황 유진 4세가 사망할 때까지, 알폰소의 보호 아래 겨우 목숨을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1435년부터 1448년까지 발라가 남부 이탈리아의 왕, 알퐁소 5세의 영지 안에 머물면서 진행한 라틴어 번역 성경과 헬라어 원어 성경에 대한 비교 연구는 에라스무스와 루터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발라의 신약성경 헬라어 원어 연구는 결과적으로 로마 가톨릭 전체에게 치명타가 되었습니다. 1443년에 헬라어 원어 성경연구를 마치고 초판본의 원고를 완성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곧바로 출판하는 경우에 이단으로 몰려서 화형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새 교황 니콜라스 5세가 취임하자 로마 교황청은 로렌조 발라에게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교황의 부름을 받아 서기관이 되었고, 성경 원문을 대조하는 보완작업을 1453년까지 지속하였습니다. 최초 헬라어 원어성경 연구서 ‘신약성경의 대조’가 완성되자 첫 번째 교정본을 새 교황 니콜라스 5세에게 헌정하였습니다.

또한 발라는 ‘사도신경’이 열두 사도들에 의해 직접 작성된 문서가 아니라는 점도 역사적인 고증을 통해서 밝혀냈습니다. 후대 종교개혁자들은 그의 저서들을 열렬히 환영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로렌조 발라의 글을 읽고서 매우 존경하게 되었고, 1513년 이후로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경을 강해하던 초창기 교수시절부터 로렌조 발라를 매우 높이 칭송하면서 인용했으며, 1518년 4월 하이델베르크 논쟁에서도 언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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