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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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8.01.2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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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르네상스와 인문주의(3)
또 한 명의 대표적인 인물은 페트라르카(1304-1374)입니다. 그는 ‘첫 현대인’으로 불리고 있는데, 처음으로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불렀던 사람입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교회가 가장 타락하고 혼란했던 ‘아비뇽 유수’ 때였고 흑사병이 창궐하여 죽음, 부패, 타락 등 불안정이 감돌던 시대였습니다.

페트라르카는 1304년 피렌체 남쪽의 아레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교황을 둘러싼 정치적 싸움에 밀려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으로 망명을 감으로써 페트라르카는 프랑스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지요. 열두 살이 되던 해 가업이던 공증 업무를 물려받기 위해 몽펠리에대학에서 민법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4년 뒤에는 유럽 최고의 대학이었던 볼로냐대학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온통 라틴어 고전에 빼앗겼기 때문에 법학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라틴어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던 페트라르카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미련 없이 법을 포기하고 라틴어 고전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재산으로 풍족하던 시간도 잠시였습니다. 온 재산을 탕진하고 나서 그는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일정한 수입과 거처를 보장해주는 교회에서 고전을 읽고 연구하는 안정된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성직자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 세속적인 부와 명예, 결혼과 사교 생활을 포기하고 ‘읽고 쓰는 삶’을 택한 것이지요. 

교회는 그가 택한 삶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당시 교회들은 그가 읽고자 하는 책들로 가득 찬 지하 문서보관서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은둔과 활동을 반복하며 교회 지하문서보관소에서 고대의 시인과 사상가, 정치가들이 남긴 문서와 편지들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 곳에서 페트라르카는 키케로를 만났고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났습니다. 수도원 지하에서 발견한 로마 시대의 문헌과 편지들은 그에게 삶의 기쁨이자 목적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단테 이후 최대의 이탈리아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애정시 ‘칸쵸니에르’는 이탈리아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23살 때 평생 잊지 못할 여인 라우라를 만납니다. 당시 라우라는 21살의 기혼녀였습니다. 페트라르카는 라우라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멀리서 그를 애모하며 366편의 시를 썼고 이 시들의 모음집이 칸쵸니에르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고전 사본들을 수집하고 자료를 편찬하여 고전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는 1340년 로마와 파리를 여행하면서 ‘계관시인’이란 칭호를 얻게 되는데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월계관 같은 관을 쓰고 있습니다.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는 페트라르카의 제자로서 라틴 고전집을 편찬하였는데, 음탕한 성애의 이야기를 다루는 그의 작품 ‘데카메론’은 변화된 당시의 인간관을 잘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데카’는 10을 의미하고 ‘헤메라’는 날을 의미합니다. 1348년에 페스트가 피렌체에 창궐합니다. 일곱 명의 젊은 여자들과 세 명의 젊은 남자들이 소름끼치는 재앙과 그 재앙이 닥친 도시의 타락한 풍속을 피하여 토스카나의 한 별장으로 도피하여 목가적인 경치에 둘러싸인 그곳에서 그들은 잠시 동안 낙원에서와 같은 삶을 즐깁니다.

낮의 열기가 찾아오고 인근 언덕으로 소풍가기조차 어려워지게 되면 열 명의 젊은 남녀들은 서로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간을 보냅니다. 열흘 동안 밤마다 다음날의 이야기 테마를 고를 사람들을 정하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돌아가며 하나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나가는데 이렇게 해서 열흘 동안 ‘데카메론’ 100편의 이야기가 생겨났습니다.

‘데카메론’은 이탈리아어로 쓴 최초의 산문 작품이지만 종교재판은 이 책을 그 안에 담긴 비도덕성 때문에 ‘정화된’ 내용이 나올 때까지라는 조건을 달아 금서목록에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그 금서를 읽고 즐겼는데 그 책을 금서목록에 올리는 일이 관철될 수 있었을까요? 그만큼 ‘데카메론’은 가톨릭 성직자들의 애독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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