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넷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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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넷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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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2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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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그리 아니 하실 지라도 감사해요 / 다니엘 3:13~18 / 찬송 321장

느브갓네살왕은 금 신상을 세우고, 온 나라 온 백성에게 절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국가 권력을 절대화 시켜서 하나님처럼 숭배받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할 것입니까?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절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을 버리는 배교요 영적인 죽음입니다.

절을 안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왕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것입니다.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왕의 신임과 방백의 지위를 잃게 됩니다. 하루아침에 세상의 부귀와 영화가 다 날아갑니다.

죽는다, 공고한대로 풀무에 던져진다, 왕의 명령에 감히 거역할 정신 나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의 명령을 거역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이 말합니다. 단3: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단3: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 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얼마나 위대한 고백이요 대단한 믿음의 말입니까?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었지 우상에게 절하고 신앙의 절개를 버릴 수는 없다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의 신앙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금 신상이 무엇입니까? 타협하면 신앙을 잃고, 타협하지 않으면 세상적인 것을 잃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물질이고 명예와 권세와 세상의 부귀영화입니다.

•오늘의 기도

다니엘과 같은 그리 아니 하실 지라도의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박경배 목사 / 송촌장로교회


 

화요일 / 은혜의 안전장치 / 고린도후서 12:7~10 / 찬송 310장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남에게 숨기고 싶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를 ‘가시’라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사정없이 찌르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가시가 너무 불편하고 활동을 하는데 힘들었고 남에게 보이기 민망하여 세 번이나 제거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 세 번의 기도에 대해 주님께서 주신 응답은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됐다! 그만해라’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시길 ‘지금까지 받은 계시가 너무 크고 놀라워 자칫하면 교만해질 수 있어서 자만해 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영적 안전장치’라는 것입니다.

교만은 한 순간에 찾아옵니다. 가장 은혜로운 순간에도 찾아옵니다. 교만에 물들게 되면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그 순간 무너집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큰 칭찬을 듣자마자 십자가 고난에 대해 반대하고 저지하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선 줄로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두려워하라(고전10:12)’고 경고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치유해 달라는 기도를 거부당한 바울은 섭섭해 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약함 가운데 나타나는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과 자신을 끝까지 사용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온전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약점을 주심까지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장치임을 잊지 맙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내게 있는 약점이 오히려 주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하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고혁성 목사 / 염광교회


 

수요일 / 낙심과 소망 / 시편 42:1~5 / 찬송 309장

기독교인들도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낙심이 될 때는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을 보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땅을 보면 침체될 수 있지만 하늘을 보면 소망이 생겨 다시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나는 눈에 보이는 육신의 모습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모습입니다. 눈에 보이는 육체의 모습이 힘들다는 것은 영혼이 힘들다는 증거입니다.

또 낙심될 때에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불안한 마음은 질병으로 연결이 됩니다. 낙심과 불안은 세상을 통해 옵니다.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면 낙심하고 실망할 일이 많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시 146:3-4).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나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야곱을 거부로 만들어 주어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계속하여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낙심되고 좌절 될 때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의 기도를 드리면 새 길이 열립니다. 낙심은 세상이 주는 것이라면 소망은 주님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나와 자녀가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두며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이규환 목사 / 목양교회


 

목요일 / 아히도벨을 이기려면 / 잠언 21:30~31 / 찬송 384장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언제나 있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백전백승은 하나님께 매번 여쭤봄으로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을 도운 아히도벨의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삼하16:23)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히도벨의 계략은 다윗 편의 후새 계략에 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아히도벨의 좋은 전략보다 후새의 안을 택하도록 압살롬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패한 아히도벨은 집으로 돌아가 목매(hang oneself) 자살했습니다. 결국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게 지고 만 것입니다. 지혜나 명철, 모략으로 여호와를 당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최신 무기를 개발하고 인해전술(人海戰術)을 준비하는 것보다 여호와 편이 되는 것이 이기는 방법입니다(잠21:30,31).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시118:6,7). 생존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 등의 말은 유효합니다.

2018년에 이기는 삶도 살고, 지는 삶도 살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면, 이길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편에 섰기에 백전백승이었습니다. “이 싸움을 할까요? 하지 말까요?” 우리 중에는 이렇게 묻지 않는 사람과 하나님조차 무조건 자기편이 되어 달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주님이 내 편이 아니라 내가 주님 편이 되어, 주님의 지혜로 살게 해주소서!

최두길 목사 / 아름다운미션교회
 

 

금요일 / 세 가지 염려 / 신명기 8:11~20 / 찬송 102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한 지 40년 만에 꿈에 그리던 가나안을 목전에 두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 있을 세가지 염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배가 부르고 재물이 많아질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광야는 하루라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모든 것이 풍족해지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풍족할 때든지 가난할 때든지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둘째는 자신의 능력과 힘을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재물이 많아졌을 때 그것이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한 것이라 말할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다면 그것은 내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이 자신의 힘으로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는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시면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20:2) 했습니다. 그들이 끝내 돌이키지 않자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세 가지 염려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날마다 믿음으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믿음이 중도에 변질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한용준 목사 / 의정부성만교회


 

토요일 / 거듭나야 합니다 / 요한복음 3:1~8 / 찬송 303장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먼저 택하시고 부르심으로 시작합니다. 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인간이 응답하면서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조건 없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필연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밟게 되는데 이를 가리켜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거듭남은 종교의 길과 신앙의 길이 다릅니다. 니고데모가 지금까지 걸어온 종교의 길과 장차 예수님께서 인도하실 구원 신앙의 길이 다름을 언급하시면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3절)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종교에 있지 아니하고 새로운 생명에 있습니다. 거듭남이란 ‘위로부터 얻은 생명으로서 다시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구원이란 고치거나 개선하는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전혀 다른 출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종교 생활을 벗어나서 예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구원 얻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마음과 행동이 다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않고 ‘사랑으로 종노릇’합니다(갈5:13).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사랑이 흐르는 길을 따라서 사랑으로 종노릇합니다. 이것은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위대한 변화입니다. 교회는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하며 위로와 격려로 사람을 세우는 공동체입니다. 그런 가족, 그런 교회로 함께 세워져 가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영생을 얻은 자녀답게 사랑 안에서 서로에게 종노릇하므로 서로를 세워나가는 주님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강동열 목사 / 순천화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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