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자랑이 사실 ‘모자’와 ‘갯벌 한 평’이라면?
상태바
당신의 자랑이 사실 ‘모자’와 ‘갯벌 한 평’이라면?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7.12.27 14: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㉞
▲ 가인과 아벨의 제사, 성경삽화. 1890년.

*창세기4:3-5>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야고보서4:1-2>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지난 주 토요일 미팅을 마친 나는 3호선 정발산역에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조용한 기다림이 아니었다. 다섯 명의 50대 여인들의 수다와 호쾌한(?) 웃음소리로 귀가 윙 울릴 정도의 소란스러움 속에서였다. 여인들은 초등학생들처럼 너무도 순진무구한 웃음과 목소리로 역사 안을 뒤흔들었는데, 공통된 주제는 ‘모자’였다.

A:와, 모자 예쁘다. 어디서 샀어?
B:백화점! 있어 보이지? 이거 사려고 두 시간을 돌아다녔지.
C:어디 백화점? 얼마야?
D:역시 다르다. 이리 좀 줘 봐. 나 좀 써 보자.
E:나도 사야지. 아까부터 좀 달라 보인다 했더니 모자빨이구나!

다섯 여인들의 유쾌한 수다에 나뿐 아니라 주위에 있던 여자들이 다 그 의문의 모자에 눈길이 모아졌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모자이길래?’하는 심정 같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여러 여자들 중 내 의견만 말하자면 ‘거저 줘도 쓰고 싶지는 않은 그저 그런 디자인과 색깔의 모자’였다. 내 옆에 있던 10대의 두 여학생은 “헐! 우리 엄마도 저러고 다닐까 봐 겁난다. 어휴, 촌스러워라! 저러니까 아줌마 소리를 듣는 거야!” 라며 키득거렸다. 그러나 다섯 여인들은 지하철이 달려오는 동안에도 모자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았다.

그 날 저녁, 나는 우연히도 인터넷을 통해 ‘올해 찍은 재미있는 과학사진’인가 하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동물이나 곤충들의 기상천외한 순간들을 사진기에 담은 것인데 그 중 압권은 ‘두 마리 짱뚱어의 영역 다툼’의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었다. 

칙칙한 갯벌에서 짱뚱어 두 마리가 입이 찢어질 듯 벌리고, 가뜩이나 튀어나온 두 눈이 아예 미사일처럼 쏘아대는 듯 더 왕왕 굴리며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웃음이 나왔지만, 몇 시간 지하철에서의 ‘모자 사건(?)’이 생각나 씁쓸했다. 짱뚱어들이 혈투를 벌이는 갯벌은 꽃은 커녕 잡초조차 바랄 수 없는, 땅도 아니고 물도 아닌 곳이다. 집도 세울 수 없고, 연인과 나란히 앉을 수도 없다. 그리고 승리한 짱뚱어가 차지하여 호령할 수 있는 면적도 잘 해야 한 평이나 될까? 또, 거기서 천수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고작 일 년이나 살 수 있을까? 그런데 한 마리를 죽이거나 불구를 만들어서라도 영역을 차지하려고 싸운다. 과학자들은 본능적인 종족보존이라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시사하는 깊이가 만만찮은 장면이다.

지하철에서의 모자나, 갯벌의 짱뚱어나 보는 사람들의 눈에 따라 그 가치가 너무도 다르게 느껴진다. 아줌마들 사이에서 그것도 5명의 여인들 사이에서 그 모자는 질투와 나도 갖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유혹의 손짓일 수 있다. 그래서 돈이 있으면 그보다 더 값비싼 모자를 사서 어느 날, 머리에 쓰고 모임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하여 친구의 기를 죽이고 자기가 여왕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여유가 없어 모자를 구입하지 못한 여인은 초라함과 자기연민에 괴로워하다가 당분간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다. 짱뚱어라고 인간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줘도 살 수도 없는 그 갯벌 한 평에서 기껏 일 년밖에 살 수 없는데 영역을 위해 죽고 죽인다. 

가인과 아벨은 더구나 형제 사이인데도 시기와 질투로 죽고 죽는다.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지만 나보다 좋은 모자를 쓰고, 나보다  괜찮은 갯벌 한 평에 사는 것 같아 죽여야 한다. 오죽하면 야고보 사도는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라고 말하였을까!

문제는 형제와 이웃을 죽이면서까지 시기하고, 욕심내는 것이 사실은 하나님 눈으로 보면 한 숟가락의 시커먼 갯벌 진흙탕물이요, 희어지고 빠져버리는 머리에 올려놓는 천조각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인의 권력이든, 재벌의 물질이든, 자랑하는 외모와 뻐기는 학벌, 심지어는 호들갑을 떠는 신앙 깊이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