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지났지만 지진 상처 여전…교회는 정부지원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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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지났지만 지진 상처 여전…교회는 정부지원 '사각지대'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7.12.2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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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포항 지진 피해 현장을 가다
▲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파된 김종하 목사의 사택. 한 달이 지났지만 지진의 상처는 여전했다.

지난달 15일 집계 이래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지진이 포항을 흔들었다. 우리 일이 아닐 거라 생각했던 낯선 재해가 덮치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주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작년의 경주 지진보다 진도는 약했지만 포항 시내 한복판을 관통한 탓에 피해는 훨씬 컸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포항시의 집계에 의하면 이번 지진의 피해액은 550억 원가량. 경주 지진 당시 피해액(110억)의 다섯 배에 이른다. 이를 복구하는 데만 1445억 원 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걱정이 큰 것은 추운 겨울 몸 눕힐 집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이다. 포항시가 임대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음에도 흥해실내체육관에는 아직 500명이 넘는 이재민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진 이후 약 한 달의 시간이 흐른 지난 21일 한국교회봉사단과 함께 포항행 KTX에 몸을 실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포항은 여전히 지진이 휩쓸고 간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국민들의 관심이 사그라드는 데는 충분했지만 지진의 상처가 아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 지진으로 완파된 곡강교회 사택. 정리하지 못한 잔해들에서 지진의 파괴력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교회 도울 곳은 교회밖에 없어요”
포항역에서 피해가 가장 심했던 북구 지역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 보이는 복구 장비들이 지진 피해 지역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나게 했다. 진앙지에서 2~3km 떨어진 첫 번째 방문지 곡강리로 접어들자 지진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마을에는 부서진 건물의 잔해가 미처 정리되지 못한 모습으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평화롭던 시골 마을은 지진으로 왠지 스산해진 모습이었다. 올해 60주년을 맞은 곡강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담임 김종하 목사 부부가 생활하는 사택이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파되는 피해를 입었다. 5~60호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에서 완파의 피해를 입은 가구는 곡강교회 사택을 포함해 4채 정도다.

“지진이 일어날 당시 사택 옥상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흔들리기에 꼼짝도 못하고 지진이 끝나길 기다렸죠.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더군요.”

집 안에 사람이 없었던 덕에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집이 내려앉지는 않아 옥상에 있던 김 목사도 무사했다. 하지만 김 목사 부부의 아늑한 보금자리는 한 순간에 폐허가 됐다. 지금은 급하게 월세방을 구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처지다.

지진 이후 한 달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달려온 김 목사는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집이 없어지니 뿌리가 사라진 느낌입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에요.”

당장 안정되지 않은 생활도 문제지만 더 큰 어려움은 교회가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포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음에도 교회는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단지 종교시설이라는 이유에서다.

두 사람의 거주공간인 김 목사의 사택도 노회유지재단에 소속돼 있는 탓에 종교시설로 분류돼 일체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곡강리는 산업단지 개발예정지역이라 신축 허가마저 나지 않는 실정이다. 김 목사는 교회를 도울 수 있는 곳은 교회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파됐는데 신축 허가는 나지 않아 답답한 상황입니다. 사택은 거주공간임에도 노회에 소속됐다는 이유로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에서조차 소외돼 있는 어려운 교회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힘을 모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살던 집에서 내몰린 상황임에도 김 목사는 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곡강교회와 김 목사는 어려운 형편 속에 구호 성금 500만 원을 마련해 주변 마을에 전달했다. 그래도 교회는 더 낮은 곳을 향해 눈을 돌려야 한다는 김 목사의 말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우리도 어렵지만 정말 소망 없이 힘들어 하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당장 내일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고민하는 이웃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교회는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 사택에서 함께 기도하는 한교봉 정성진 이사장과 포항 기독교교회연합회 목회자들.

곡강교회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청하제일교회는 예배당이 지진 피해를 입었다. 교회의 상징과도 같은 십자가 첨탑이 꺾여 붕괴위험 때문에 결국 철거했다. 1986년 건축당시 기둥을 끝까지 올리지 않고 기둥위에 옥상을 얹는 구조로 설계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은 지진으로 옥상 전체를 철거하고 보수해야 하는 처지다.

가장 많이 이슈가 됐던 흥해 지역과는 달리 조명을 받지 못한 청하 지역에는 지원이 열악했다. 소재성 담임목사는 보수가 시급한 상황임에도 재정이 부족해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교회의 1년 예산이 1억 6천만 원인데 복구비용 견적을 내보니 5천만 원이 나왔습니다. 103년 역사를 간직한 청하를 대표하는 교회인데 지역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어요. 옥상 균열에 임시방편으로 우레탄폼을 발라 버티고 있습니다.”

교회 걱정에 잠도 편히 자기 힘들다는 소재성 목사 역시 정부지원에서 소외돼 있는 점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지목했다. “주민세도 내고 국방의 의무도 다한 똑같은 국민임에도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답답합니다. 교회도 지역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공성을 가진 건물임을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포항기독교교회연합회 회장 조근식 목사는 시당국이 처음엔 교회에 대한 피해접수조차 받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교회가 항의하자 그제야 피해상황을 접수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정부지원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복구 사각지대에 있는 교회를 위해 한국교회가 힘을 모아주셔야 합니다.”

▲ 포항동부교회 김영걸 목사(가운데)에게 지원금을 전달하는 한교봉 정성진 이사장(좌측)

“이재민들에게 작은 온기 보탭니다”
이날 포항 방문을 주선한 한국교회봉사단은 아픔을 겪고 있는 포항 시민들을 위해 성탄 선물 400상자를 전달했다. 체육관에서 겨울을 보낼 이재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온기를 보태줄 온열매트와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손으로 적은 성탄카드가 준비됐다.

한교봉 정성진 이사장과 자원봉사자들은 오전부터 포항동부교회에 모여 편지를 작성하고 선물을 포장했다. 포항동부교회도 지진 피해가 없지 않았지만 더 막막한 상황에 놓인 이웃과 교회를 위해 성도 30여 명이 자원해서 참여했다.

선물 포장에 함께한 포항동부교회 이채균 권사는 “수능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 염려가 많이 됐다. 추운 날에 체육관과 천막에서 거주할 이재민들 걱정에 편히 있을 수 없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봉사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정성스럽게 포장된 선물은 포항시가 구호품을 수합하고 있는 양덕 한마음체육관에 전해졌다. 선물 전달 현장에는 포항시 이원권 정무부시장이 직접 한교봉과 한국교회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선물은 체육관에 거주하고 있는 학생들을 우선으로 위로가 필요한 이재민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 이재민들에게 전달할 선물을 포장하는 포항동부교회 봉사자들.

한교봉은 이와 더불어 지원에서 소외된 교회를 위한 성금 2천만 원을 포항기독교교회연합회에 전달했다. 정성진 이사장은 “예수님도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어려움을 겪는 포항시민들에게 주님의 평안이 임하기를, 또 속히 안락한 보금자리로 돌아가실 수 있기를 기도하겠다”면서 “계속해서 성금이 모아지는 데로 포항 교회에 추가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진을 겪은 주민들의 정신적 상처도 적지 않다. 취재진과 한교봉이 방문했던 지난 21일은 여진이 중단된 지 열흘이 넘은 시점이었지만 또 집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은 여전했다. 주민들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처럼 주변에서 조금만 물건이 흔들려도 깜짝깜짝 놀랐다. 성탄절인 25일에는 규모 3.5의 여진이 발생해 불안이 현실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주민들은 또다시 지진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조근식 목사는 성금을 모으는 것과 동시에 포항에 끊임없는 관심을 당부했다. “무너진 건물은 여전한데 국민들의 관심은 벌써 포항을 떠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포항은 아직 건물도, 집도, 교회도, 주민들 마음의 상처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작은 금액이라도 사랑을 보태주시고 특히 어려운 교회를 돌아보고 마음을 모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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