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종말론적 신앙 안에서 이해돼야 한다
상태바
예루살렘, 종말론적 신앙 안에서 이해돼야 한다
  • 김영한 박사
  • 승인 2017.12.21 1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오늘날 미국의 친이스라엘 편향적 정책은 중동평화를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작년 여름 미국 공화당은 전당대회를 얼마 앞두고 예루살렘을 ‘분할할 수 없는(undivided)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당 강령을 만들었다. 미국 공화당은 이스라엘 강경파들의 입장을 지지한 것이다. 이스라엘 강경파들은 자기들의 생존권만 주장하고 팔레스타인의 생존권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인을 학대하지 말고 자기 같이 사랑하라는 모세의 계명에 어긋나는 것이다(레 19:33~34). 유대인들의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일차 함락되고, 주후 132~135년에 바르 코흐바(Bar Kochba, 별의 아들)가 주동이 된 반란으로 인해 예루살렘이 재함락 된 후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로 유배되어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아랍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와 살았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성지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 근본주의 분파인 세대주의자들(dispensationalists)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예루살렘에 관한 모든 성경의 기록을 민족적 유대와 유대주의적 성지(聖地)와 관련시키고 있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야훼가 주신 영토를 이스라엘이 전부 회복할 때 마지막 세대가 완성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 수도이며 예루살렘의 회복을 종말의 때로 믿는 시오니즘(sionism)을 신봉한다. 이것은 성경의 구속사적 의도를 유대 민족주의적으로 편협화 시키는 견해이다. 세대주의자들은 구약성경의 이스라엘을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와 연결시켜 해석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을 구약의 유대백성과 같은 맥락에서 다루고, 신약의 교회를 도외시한다.

이러한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의 성경(이스라엘) 해석은 개혁신학적 견지에서 볼 때 왜곡된 시각이다. 개혁교회는 진정한 이스라엘은 국가적 의미에서 오늘날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민족적 의미의 현 이스라엘은 유대교의 율법을 지키는 데 몰두하며, 신약의 약속을 도외시하며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국가로서의 오늘날 이스라엘은 성경의 구속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이 개혁교회의 관점이다.

오늘날 개혁신학적 관점에서 제기되는 질문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선민의 약속을 주신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구냐는 것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정통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통 기독교 관점에 의하면 정통 유대인들은 메시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오늘도 여전히 유대교의 전통과 법에 얽매어 있기 때문에 저들은 선민의 자격이 없다.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신앙이 없으면 이방인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방인인 갈라디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만 아브라함 자손이요 유업을 상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그리스도 신앙으로 회심하지 않는 한 평화의 수도 예루살렘은 큰 의미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인하는 것은 구속사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단지 분쟁의 불씨를 뿌린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호 제한과 상호 양보만이 오늘날 중동지역의 소극적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다가오는 새 예루살렘을 지시하는 예표로서만 우리들에게 의미를 지닌다. 예루살렘은 종말론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