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물과 땀은 어디에 쏟아지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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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눈물과 땀은 어디에 쏟아지고 있는지요?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7.12.13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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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㉜
▲ 성경을 읽는 예언자 안나, 렘브란트. 1631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

*히브리서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몇 년 전, 나는 우연한 기회로 노숙인들과 연을 맺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예진흥원 주관 행사로 노숙인 쉼터의 재활자들에게 인문학 공부를 지도했다. 그러다가 한 사회복지사의 제안으로 그들과 합창제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해마다 노숙인 재활자들로 이루어진 합창단, 밴드, 작은 오케스트라 등등의 음악 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올해로 3회 째 공연을 열었는데, 이번에는 서울시의 후원으로 조금은 넉넉한 잔치를 할 수 있었다.

1, 2회는 국회도서관 강당을 사용하다가 2017년 11월, 공연 때는 구세군빌딩 안에 있는 난타극장에서 성대하게 합창제를 열었다. 홍보기간이 짧았지만 의외로 400명이 넘는 분들이 와서 500석 극장은 만원사례 흉내는 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사회까지 맡아서 더욱 흥분된 시간이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난 뒤, 여러 사람에게서 공통된 감상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아빠의 청춘이라는 합창을 들을 때 눈물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아빠의 청춘이 그렇게 감동적인지 몰랐다. 듣는 내내 울었다.” 한마디로 ‘아빠의 청춘’이라는 유행가 앞에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무너지고, 위로받고,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런 간증 아닌 간증을 한 사람들 중에는 내가 기도하며 전도 중인 두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일이면 온 몸이 녹초가 되더라도 그들을 데리고 그들이 사는 지역의 교회로 인도하며 전도하고 있다. 그들은 문단에서 저명한 작가들이다. 5년이 넘는 중보기도 시간 끝에 이제는 거절하지 않고 예배드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철저하게 인본주의로 갑옷을 입은 그들. 자타 공인 지성인의 선두에 서 있는 그들에게 웬만한 설교는 유치하게 판단되고 만다. 그래도 내 기도 탓인지, 내가 불쌍해보여서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인지 그들은 이제 주일마다 예배드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많이 토로하지 않는 상태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마저 유행가 한 곡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는 말에 그날 밤, 나는 절망감에 휩싸인 기도를 했다. ‘하나님, 유행가 한곡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왜 어찌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쉼없이 판단과 해부와 지적을 하는 건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마음 한 구석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듯 하며 넘치는 희망에 벅찬 기도를 했다. ‘하나님, 그들이 그런 유행가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면 하나님 말씀, 하나님 찬양 앞에서는 마침내 피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감사하겠네요? 바로 그럴 수 있다는 전조 증상이 아닐까요?’

나는 며칠 동안 이 주제(?)를 가지고 묵상했었다. 요즘 사람들은 감동받고 싶어 몸부림치는 존재들같다. 그래서 광화문 교보빌딩 네거리에는 철마다 감상의 극치를 달리는 문구가 적힌 대형 천이 휘날린다. 그 문구들은 거의 우리의 시신경을 자극하여 눈물샘을 흔들리게 하고, 가슴을 파르르 떨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익광고든 일반상업 광고들도 휴먼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감동시키려 애쓴다. 개인들은 어떠한가. 저마다의 공화국인 SNS 영토 안에서 사람들의 ‘감동받았어요!’라는 축전을 받기 위해 쇼 아닌 쇼를 하고 있다. 기독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소명이나 되듯 온통 세상 사랑과 관심은 다 받으려고 자신을 포장하고, 회칠하느라 분주하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왜냐하면, 예리하게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찌르고 들어와서 조각조각 내며,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 환하게 드러내는 말씀과 찬양 앞에서는 너무도 무감각하기 때문이다. 

현대판 나병환자가 이게 아닌가 한다. 영의 지체들이 뚝뚝 떨어져나가도 전혀 감지 못한 채 말씀 앞에서는 졸거나 세상 지식으로 짓밟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그러나 피부를 살짝 건드려주고, 등짝을 잠시 매만져주는 세상 감동 앞에서는 부끄러움 없이 눈물을 흘리고, 지갑을 열고 마음을 바친다. 

 

함께 기도

하나님! 우리의 눈물과 땀이 엉뚱한 곳에 흩뿌려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면서도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찌르고, 부서뜨리는 말씀과 찬송 앞에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처럼 대들고, 조롱까지 합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한번만 더 기회를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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