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와 신앙 기로에 놓인 기독교 학교…대부분 입시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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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와 신앙 기로에 놓인 기독교 학교…대부분 입시선택"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7.12.08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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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지난 7일 기독교학교대토론회 개최

지난 2007년 대광고등학교 강의석 학생이 종교교육 의무 실시를 이유로 단식을 단행한 이래 기독교학교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사건 이후 종교교육을 향한 여론은 차가워졌고 정부의 통제마저 강력해졌다. 기독교학교 교장들 사이에서는 “지금 정책 아래에서 엄밀한 의미의 기독교학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탄식도 나온다.

위기에 처한 기독교학교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기독교 교육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특히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인 기독교사립학교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한국기독교학교정상화추진위원회와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는 지난 7일 장신대 세계교회협력센터에서 기독교학교대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에서 기독교사립학교가 존속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개최된 토론회에는 박상진 교수(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제철웅 교수(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송인수 대표(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진우 대표(좋은교사운동), 김철경 교장(대광고등학교), 정기원 교장(밀알두레학교)이 열띤 토론을 주고받았다.

# 기독교 건학이념 실현, 제도의 문제? 의지의 문제?
논쟁의 핵심은 기독교사립학교에서 기독교 건학이념의 실현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기독교학교 교장들은 건학이념을 반영할 수 있는 교육정책이 마련되지 않고 현행 입시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기독교 정신 실현은 어렵다고 호소했다.

정기원 교장은 “정부의 인가와 지원을 일체 포기한다면 기독교 교육을 맘껏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교육과정, 교원임용 등 학교에서 하는 모든 것이 다 불법이 된다”면서 이런 형태의 비인가 사립학교가 유일한 대안이라면 한국에서 기독교학교는 존속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다만 그는 “교육 기본법 25조에 사학의 설립정신이 존중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느냐가 기독교교육 법적 활로 발굴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법적 근거 마련도 시급하지만 한국사회의 피 터지는 입시경쟁 또한 종교교육을 후퇴시키는 현실적 방해요소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기독교학교가 스스로 건학이념을 잃어버리고 입시교육과 명문대 보내기에 혈안이 돼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가 되며 갖게 된 자율성이 오히려 입시교육 강화로 활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송인수 대표는 “입시냐 신앙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면 신앙을 고르는 것이 기독교학교일 테지만 많은 기독교학교들이 입시를 선택하는 것을 목격했다. 결국 입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라며 “학생들에게 신앙교육보다 입시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순간 기독교교육은 들러리로 전락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 대표는 “자사고의 자율성을 조사해본 결과 학생들의 귀가시간이 12시가 넘었고 국영수의 비중이 규정 비율인 50%를 초과하고 있었다. 이는 대부분 기독교사학도 마찬가지”라면서 “오히려 기독교학교인 모 초등학교가 영어교육 비중이 가장 높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 학교를 기독교학교가 아닌 입시 대비 학교로 본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제도에 앞서 기독교학교가 진정으로 기독교 건학이념을 실현하고 입시보다 신앙을 앞세울 의지가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면서 “의지만 있다면 현행 제도 내에서도 예수님을 전할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철경 교장은 “주어진 시간에 성실히 교육시키는 것을 입시교육이라고 매도할 수 있나. 우리는 오히려 입시교육은 내팽개치고 다른 프로그램만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학교가 입시교육을 내팽개치고 기독교교육을 할 토양이 만들어졌는가? 아니다. 입시체제와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학부모들이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면서 “대입 결과가 잘 나오면 입시위주라고 비아냥대고 결과가 잘 안 나오면 똑똑한 애들 뽑아놓고 뭐하냐는 조롱을 듣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 학교에 주어지는 자율성, 어디까지 가능할까
기독교사립학교에 자율성이 어느 선까지 주어지는 것이 적절한가도 주요 쟁점 중 하나다. 그 중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학교의 ‘학생 선발권’이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자사고가 건학이념에 맞는 학생들을 뽑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입시 교육을 강화하고 학교 서열화를 조장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거기에 서민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학비까지 보태지면서 이른바, ‘귀족학교’를 만들었다는 목소리도 높다.

송인수 대표는 “서울대 입학생 통계를 살펴보면 자사고·특목고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학교에서 말하는 다양성은 구호에 그쳤고 뚜껑을 열고 봤더니 성적 우수 학생 중심이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철경 교장은 “대광고는 물론 서울형 자사고는 이미 학생 선발 과정에서 성적을 고려하지 않는다. 또 정원의 20%를 사회적 보호대상 아이들로 선발하고 장학금을 준다. 누구나 다 지원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김 교장은 또 “우리는 종교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크리스천 학생들에게 바른 신앙 교육을 실시하려는 것”이라며 “특수한 목적에 따라 다른 교육형태를 추구하는 것이지 귀족학교나 분리교육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진우 대표는 “부모의 학교선택권과 회피권이 보장돼야 한다. 처음부터 분리를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대광고도 성적을 보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면서 “다만 등록금이 일반고의 세배에 이른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소득에 따른 분리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 공립-사립 균등한 지원 요구하고 공공성 확보해야
사립고의 비싼 학비에 의한 소득분리 현상은 잘못된 정부 정책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철웅 교수는 “헌법은 모든 사람들이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공립학교가 사립학교보다 저렴한 이유는 전 국민이 내는 세금 때문 아닌가?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부모 역시 세금 내는 국민이고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사립학교와 국립학교에 동등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화장실에 오래 있으면 역한 냄새를 느끼지 못하듯 국가에서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잘못된 교육제도가 지속돼 왔기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며 “OECD 국가 중 사립학교에 경상비 지원을 하지 않는 국가는 미국과 우리나라밖에 없다. 국가와 학교는 통제하는 관계가 아닌 계약관계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 교수는 이어 한국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서열중심 사회 문화가 개선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자식을 잘 살게 만들고 싶고 성공시키려는 욕구, 그래서 입시교육을 시키려는 부모 마음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나. 모두에게 훌륭한 개인을 기대할 수는 없다. 서열사회를 만드는 현 교육제도 개선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김진우 대표는 기독교학교의 활로는 공공성과의 조화라고 진단했다. 그는 “기독교학교가 자율성을 갖는 한편 공공성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기독교학교가 풀어야 할 과제”라면서 “국민이라면 똑같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소득분리 현상을 해결해 사회전체적인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그래야 귀족학교라는 오명도 벗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만약 종교교육 자율성을 얻기 위해 정부의 통제와 맞설 때 기독교학교 관련 당사자만 목소리를 높인다면 승산이 없다”면서 “함께 싸울 수 있는 시민사회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도록 공공성을 확보하고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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