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둘째주 가정예배

운영자l승인2017.12.06 16:30:07l수정2017.12.06 16:30l14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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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 히브리서 11:6 / 찬송 325장

천국이 천국 되는 것은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함이 부요이며, 능력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믿어도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고 평안이 없는 이유는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의식한다는 것입니다. 공간적으로 함께 있어도 의식하지 않으면 함께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은 함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언제나 ‘Coram Deo’(코람데오), 하나님이 항상 내 앞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고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시선을 인정하면서 살면 평안한 삶, 담대한 삶, 정직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라고 말합니다(행4:19~20). 살아있는 권력 앞에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든 까닭은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만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정직한 삶을 살았습니다(삼상12:3). 사무엘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앞에서 살았기에 정직했고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소유에 자유 했습니다. 충성된 삶도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시는 하나님 앞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오늘의 기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함으로 축복자요, 승리자요, 자족한자요,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게 하소서.

박경배 목사 / 송촌장로교회

 

화요일 / 잃게 되면 잃으리라 /창세기 43:13~14 / 찬송 253장

늙고 지친 야곱에게 베냐민은 사랑의 추억이며 위로 자체였습니다. 이미 죽은 그가 사랑했던 아내 라헬과, 온갖 애정을 쏟았던 이미 이십여 년 전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 요셉을 대신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렇기에 야곱에게 베냐민을 꼭 데리고 와야 한다는 말은 청천벽력과 같았습니다.

양식이 다 떨어져가도 그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베냐민을 보내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야속하게도 가뭄은 더 깊어 갑니다. 양식은 곧 바닥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은 66명 가족 전체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입니다.

야곱이 드디어 결심을 했습니다. 베냐민이 그의 모든 기대와 위로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가족을 위태롭게 만들면서 자신의 감정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 최고 지도자가 해야 할 결단인 것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애굽의 총리의 마음을 감동시켜 달라는 중보기도와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라는 일사각오의 정신이었습니다.

생즉사, 사즉생! 이런 결단이 늘 하나 되지 못하고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찬 이 위기의 가정을 믿음으로 하나 되고 사랑의 관계로 회복하고 더 돈독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혹 나만 아끼는 것 때문에 관계가 왜곡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막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더 큰 은혜를 받고 온전히 살기 위해 먼저 내려놓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결단이 요구됩니다.

•오늘의 기도

내 마음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내놓지 못하고 움켜쥔 모든 것들을 믿음으로 내놓을 수 있도록 도우소서!

고혁성 목사 / 염광교회

 

수요일 / 마른 뼈와 큰 군대 / 에스겔 37:1~14 / 찬송 540장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마른 뼈가 있는 골짜기를 보여 주면서 그 뼈들이 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이라면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준 골짜기의 뼈들은 자기 민족을 보여 준 것입니다. 에스겔은 포로 생활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 모습이 굶주림에 허덕여서 뼈만 앙상하고 있는 죽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에스겔은 주님이라면 하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른 뼈는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들이 왜 마른 뼈가 되어 고생을 하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면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넣으면 살 수 있게 한 이유는 ‘여호와인 줄 알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죽어 있는 자들이 다시 살아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들어갔을 때에 다시 살아나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에스겔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고 싶은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적을 경험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저와 자녀들이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이규환 목사 / 목양교회

 

목요일 / 주와 함께 / 마태복음 28:20 / 찬송 440장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예수님의 전도 지상명령입니다. 절대 명령이지만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주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빌4:13).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서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짧고도 편한 길이 있었지만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한 둘이 아닌 수많은 여럿과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의견이 분분하여 하나 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하는 것과 이스라엘의 12지파가 하나 되는 것이 하나님이 광야학교로 인도하신 목적이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면,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에녹과 노아입니다. 동행은 나란히 걷는 것을 뜻합니다. 누구 하나 앞서거나 뒤쳐지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은 보폭을 줄이셔야 했지만, 에녹은 가랑이가 찢어질 만큼 늘여야 했습니다. 노아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과의 동행하기 위해 마른 하늘아래에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주와 함께 살아야 영생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의 임마누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게 하소서!

최두길 목사 / 아름다운미션교회

 

금요일 / 곤고함을 병행하게 하시는 하나님 / 전도서 7:13~14 / 찬송 386장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셨을 뿐 아니라 지으신 모든 것을 경영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대상29:11), (삼상2:7), (엡1:1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해 인생길에 두 가지를 행하십니다.

첫째로 형통과 곤고함을 병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이 형통함과 곤고함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라” 했습니다. 모든 것이 잘 풀릴 때는 하나님께서 환경을 열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잘되는구나 생각고 기뻐하며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미래를 사람에게 일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다 아시지만 사람은 알 수 없도록 제한시키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잠3:5-6).

본문에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했습니다. 곤고함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목적이 있어 허락하셨으니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보고 자신을 돌아볼 기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곤고함이 닥칠 때는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 하고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난 것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롬8:28).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작정한다면 곤고함은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됩니다.

우리는 형통할 때나 곤고할 때나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은혜를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한용준 목사 / 의정부성만교회

 

토요일 / 선택 이야기 / 에베소서 1:3~6 / 찬송 288장

예수를 믿으면서 아름답게 변화되는 성도가 있는 반면에, 교회를 오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삶이 변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원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이란 인생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며, 그 목적은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것 없이는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수도 없고, 단절됐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참된 복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복을 주시며 땅에서 번성하고 충만하기를 바라셨지만(창1:28), 인간의 선택은 늘 악한 계획과 죄악 된 행동이었습니다(창6:5).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를 통해 구원의 물줄기를 새롭게 흘려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창12:2-3). 구원이란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신 사건입니다(요15:16).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나 조건이나 헌신이나 그 어떤 것과도 상관없이 구원을 거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오직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은 다 내어주신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찬송과 예배입니다. 온 마음 다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의 열매를 드립시다.

•오늘의 기도

구원을 주신 하나님, 우리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예배자들로 살아가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강동열 목사 / 순천화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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