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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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17.11.2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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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감사의 제사 시편 50:22~23 / 찬송 325장

본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행위를 옳게 하는 사람을 환난 날에 건져 주시고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시50:14).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영광 받으시기 위함인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가장 첫째 되고 가장 중요한 방법이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행위를 옳게 하는 사람에게 더 큰 복을 주십니다.

중단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기 원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을수록 복을 받을수록 점점 더 감사 행위를 잘 나타내야 됩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되 옳게 해야 합니다. 마음과 정성이 담긴 감사입니다.

감사의 표현은 진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정성이 없는 감사는 잘못하면 불쾌감마저 유발하기 쉽습니다.

본문에 보면 ‘감사의 제사를 옳게 하는 자’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원래 ‘제사’란 말은 ‘희생’이란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제사는 희생과 정성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 때 하는 감사는 향이 강합니다. 하나님이 흠향하십니다. 내가 못 입고 못 먹고 못쓰더라도 정성껏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놀랍도록 축복하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 크고 좋은 것, 귀한 것을 힘껏 드릴 때 하나님께서도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좋은 것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감사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환란에서 구원받게 하옵소서.

박경배 목사 / 송촌장로교회

 

화요일 / 무엇이 기준입니까? / 사사기 17:6, 21:25 / 찬송 546장

사사기를 영적 어둠의 시대라고 평가합니다. 사사기 17장부터 21장까지는 사사시대 초기에 있었던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기록상 사사기 말미에 둔 것은 사사시대 전반적으로 이런 상태였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거금 은 천백 개를 잃어버린 미가의 어머니의 저주와 그것을 훔쳤던 미가의 고백, 돌려받은 은으로 신상을 만들고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떠돌이 레위인을 집안 제사장으로 삼는 일에 하나님을 인식하는 일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직도 거주할 땅을 얻지 못한 단지파가 미가의 집에 있는 레위인을 무력으로 자신들의 지파를 위한 제사장으로 삼은 것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라는 생각이 개인에서 지파로 옮겨진 것 외에 의미가 없습니다.

특히 한 레위인이 첩을 취한 것도 문제이지만 행음하여 친정으로 간 여인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기브아에서 당한 성폭행에 의한 살인과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내란은 한 지파가 거의 없어질뻔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길르앗 야베스를 진멸하고 그것도 모자라 명절을 이용하여 처녀보쌈을 허용한 일까지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이 그들 속에 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사는 시대가 가장 어둡고 불행한 시대입니다. 바로 이 시대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지금 당신을 지배하는 삶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말씀입니까? 내 생각입니까?

 

•오늘의 기도

혼돈의 시대 속에서 오직 주의 말씀으로 나의 삶의 표준으로 삼고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고혁성 목사 / 염광교회

 

수요일 / 에스겔의 변화 / 에스겔 1:1~3 / 찬송 545장

에스겔은 포로 청년이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선지자로 활동했습니다. 포로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고 부르신다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날이 30세였습니다. 그가 바벨론 땅에서 5년을 지내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이 열리는 환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에스겔은 하늘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심을 체험한 에스겔은 포로 생활을 하는 자기 백성들에게 희망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바뀌었습니다. 포로 생활의 고달픈 자들에게 위로와 자유에 대한 소망을 주었습니다.

에스겔은 포로의 몸으로 노동을 했지만 그의 마음은 성전을 향한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포로 있지만 예루살렘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시 137:5~6). 하나님을 잊지 않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시대가 올 것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이 마치 포로 생활처럼 자유가 없고, 앞 날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면 변하여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는 것은 절망이지만 그루터기 남아 있으면 다시 새 싹이 나옵니다(사 6:13).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가 됩니다. 바벨론 포로 중에 어린 소년 다니엘과 청년 에스겔이 거룩한 씨로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씨를 통하여 새롭게 일하시는 분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저와 자녀들이 거룩한 씨가 되어 내 희망을 주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이규환 목사 / 목양교회

 

목요일 /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사도행전 9:10, 11 / 찬송 511장

사울이 살기등등하여 다메섹으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주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아가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를 박해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행9:4).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은 긴장했습니다. 사울에 대한 악한 소문을 이미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도망치거나 무력으로 저항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이 다메섹 길목에서 사울을 사로잡습니다.

시비 정도가 아니라 해치려고 달려드는 사울을, 빛과 함께 갑자기 나타나 단 번에 거꾸러뜨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 그때에 사울은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직가(지금의 델 르무스타큄)에 있는 유다의 집으로 이끌려 갔습니다. 거기서 사울은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다메섹에 거주하는 아나니아도 사울의 출현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을 붙잡으신 주께서, 기도하는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서 그를 부르십니다. “아나니아야!”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아나니아의 이 대답은, 무슨 말씀을 하시든 따르겠다는 뜻입니다. “사울이 기도하고 있다. 사울은 네가 가서 안수하여 눈을 회복시켜주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다”고 말씀하시자,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주님은 이방인을 위해서 택한 그릇이 사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에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안수하여 보게 하고 세례를 베풉니다. “내가 여기 있다”고 대답하는 신실한 주의 종들(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다윗 이사야 등등)로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분부하시면 제가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최두길 목사 / 아름다운미션교회

 

금요일 / 기도해야 하는 이유 / 요한복음 14:13~15 / 찬송 364장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움으로 사는 것이 정상입니다(시146:5).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는 영원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해서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중심, 세상 중심으로 살면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사59:1-2).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주시고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도와주십니다(요일1:9)(시66:18~20).

하나님은 또 믿고 구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지도록 해주십니다.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섬기자 3년 6개월 동안 비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에게 다시 비를 내려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 엘리야가 말씀을 붙잡고 땅에 꿇어 엎드려 일곱 번 간절히 기도하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비가 내렸습니다(약5:17).

또한 마귀는 시험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마귀를 이길 능력이 없습니다. 때문에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 하셨습니다.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시험을 이기도록 해주시고 믿음의 승리자가 되게 하시고 주님을 끝까지 섬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오늘의 기도

기도를 쉬지 않음으로 믿음의 승리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한용준 목사 / 의정부성만교회

 

토요일 / 구원에 관하여 / 창세기 50:15~17 / 찬송 401장

예수께서 오신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함입니다(마1:21).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셨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구원은 참 좋은 것입니다. 구원의 본질을 안다면 우리 생애는 더 이상 메마른 들판처럼 황량하지 않고, 날마다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성경은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장막에 거할 때나, 특히 애굽에 팔려가서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나,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을 때나 그가 형통했다고 3번이나 기록합니다(창39:23). 구원 받은 자의 삶은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습니다(19절). 구원은 언제나 과거를 뛰어 넘어 미래로 향한 삶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파는 악을 행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어서 구원하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20절). 인간은 악한 의도와 악한 계획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좋은 계획, 선한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요셉은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그의 남은 힘을 형제들을 위로하고 그 자녀들을 기르는 일에 사용했습니다(21절).

형들이 용서해 달라고 했을 때 요셉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용납되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우리는 무엇인가에 접속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접속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스타일이 결정됩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의 한계에 갇혀 있는 사람이 불평불만에 접속하고, 반대로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접속하는 사람은 언제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과 접속하며 살아갑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으며, 늘 하나님과 접속해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강동열 목사 / 순천화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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