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넷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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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넷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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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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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감사 속에 담긴 축복 (2) / 마태복음 14:13~31 / 찬송 430장

마 14장에서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본문을 유의하여 보면 큰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병인을 고쳐 주시며 배고픈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무리를 마을로 보내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자고 말씀드릴 때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안에 기적을 창조하는 재료가 있음을 보신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항상 밖에서 도움을 청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들을 과소평가하여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의 가치를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원이시고 힘이십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베풀기 전에 먼저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창조하는 능력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실 때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마14:19~21) 감사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감사 중의 감사는 아직 받지 않은 것을 믿음으로 받았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드리신 감사 기도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보통 사람은 보기 때문에 믿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믿기 때문에 보는 것입니다. 믿기 때문에 아직 받지 않았지만 미리 받은 것처럼 감사하는 것입니다(요11:40~41). 예수님은 감사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오늘의 기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실상이라 미리 감사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박경배 목사/송촌장로교회

 

화요일 / 입술의 열매 / 잠언 12:13~14 / 찬송 546장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은 그가 드러낸 평소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입니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는 곧 그 사람의 생각과 인격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말’은 사람의 생각을 담는 ‘그릇’입니다.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은 믿음과 비전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불신앙에 묶여 있는 사람은 불신에 찬 부정적 언어를 사용합니다.

따라서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생각은 말로 표현되고 그 말은 그가 살아가는 ‘행위’라는 ‘열매’로 나타납니다. 평소에 어떤 말을 주로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를 되돌아 봐야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믿음의 언어와 행동으로 변화되길 간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잠언 23:4에서는 무엇보다 지킬 만한 것들 중에서 먼저 ‘마음’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기 때문입니다. 평소 하나님을 기준으로 하는 바른 마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동시에 진실과 유순함으로 정제된 우리의 입술과 그에 따른 올곧은 행위를 통해 그가 가진 바른 마음을 선명하게 드러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과 입술과 행동은 각각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결코 따로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하게 고정시켜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입술이 진실되고 화평하고 덕을 세우는 말로 사용되길 힘써야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 마음이 주께로 향하고 우리의 입술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리를 내며 말한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고혁성 목사 / 염광교회

 

수요일 / 두루마리 책 / 예레미야 3:13~18 / 찬송 336장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왕국이 멸망하는 시기에 선지자로 활동했습니다.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왕과 백성들에게 전파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여호야김 왕이 통치했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라 한 것은 왕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며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에 소망과 복된 말씀도 주지만 때로는 책망의 말씀도 주십니다. 어떤 말씀이든 듣고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주었고, 그 말씀은 바룩이 책에 기록하여 백성들에게 낭독하게 했습니다. 왕께 전달하여 왕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을 때에 기적이 일어나지만 말씀을 듣고 무시하면 재앙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야김 왕이 지금이라고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악한 길에서 돌아온다면 재앙을 내리지 않고 용서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여호야김 왕은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화로 불에 던져 태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멸시한다면 하나님께서 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태워 버린 여호야김 왕도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에 복이 오고, 말씀을 듣고도 무시한 삶을 살면 왔던 복이 다시 떠납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저와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이규환 목사 / 목양교회

 

목요일 / 충성의 사람 / 사무엘하 23:9~12 / 찬송 352장

성경에서의 충성은, 차원을 달리합니다. 충성의 대상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을, 피조물인 인간이 신실함으로 도리(道理)를 다하는 것입니다(행4:19; 5:29).

충성은 믿음, 헌신, 사랑, 섬김, 겸손, 사명 등과 맥(脈)을 같이 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도 충성이 들어있습니다(갈5:22). 내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목숨을 걸지 않고는, 충성은 어림도 없습니다.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고 했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다니엘과 세 친구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충성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이방나라에서도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향하신 뜻을 이루어 드렸습니다(행13:22).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왕을 두 번씩이나 살려주고,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련의 과정과, 성전을 지으려고 했던 등등의 일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모습입니다.

시편150편 중에 73편이 다윗의 시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했더니, 다윗에게 충성하는 장수들이 많았습니다(삼상23:16, 잠25:13). 충성하는 사람은 신앙에서 물러서지 않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아주 작은 일도 하찮게 여기지 말고, 주께 하듯 성실과 정직한 마음으로 하게 하소서!

최두길 목사 / 아름다운미션교회

 

금요일 / 아홉은 어디 있느냐 / 누가복음 17:11~19 / 찬송 303장

그리스도인은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죄는 영혼을 파괴시키고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놓고 심판을 받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죄를 씻어주셨고 부활하셔서 생명을 주시고 함께 하시고 지켜주시고 천국까지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시103:2~5).

감사는 깨닫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지만 감사할 줄 모릅니다.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자가 행복한 자입니다.

본문에서 아홉 명은 감사하지 않음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생명과 천국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병을 고쳐주신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구원을 받고 주님과 영원한 관계를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아홉 명은 병 고침은 받았지만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감사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면 마귀가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건강해집니다. 헬라어의 감사라는 단어는 카리스로서 은혜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카리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하는 자가 받고 감사함으로 은혜가 내 것이 됩니다. 감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5:18) 감사함으로 삶이 풍성해지고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지고 건강해지고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늘 주님께 감사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한용준 목사 / 의정부성만교회

 

토요일 / 교회여 깨어나라 / 요한계시록 2:18~29 / 찬송 287장

사데 교회는 소아시아의 7교회 가운데 라오디게아 교회와 함께 가장 심한 질책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안일함과 해이함이 교회 안으로 그대로 깊이 들어온 결과 사데 교회는 영적인 잠이 들었고 마침내 죽은 교회로 전락했습니다.

식물인간처럼 식물교회가 된 사데 교회에 주신 경고는 무거운 것이었습니다(계3:1).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세상 모든 여건은 좋았지만 그것들을 의지하면서 서서히 하나님을 떠났고 힘도 사라졌습니다. 나의 신앙 가운데 죽은 모습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데 교회가 받은 칭찬은 ‘남은 자들’ 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교회의 희망이고 세상의 희망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다른 교인들과 다르게 세속화를 거부하고 거룩한 삶을 열망하며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인생을 살아가는 남은 자들을 가리켜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 이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다르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힘이고 감화력입니다. 죽은 교회는 영성과 도덕성을 상실한 교회입니다. 반대로 성도는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는 거룩한 영성과 삶의 열매인 도덕성으로 날마다 자신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깨어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못한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행하는 것이 곧 “깨어있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깨어나지 못하면 죽습니다. 지금 우리는 깨어나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나는 우리가 다짐할 신앙 내용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다시 깨어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므로 미래가 복되게 하소서.

강동열 목사 / 순천화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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