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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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그 이후
  • 정성진 목사
  • 승인 2017.11.1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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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1517년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성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이후로 종교개혁은 시작되었다.

그 정신을 이어 받은 종교개혁 후예들이 세운 교회를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고 부른다.

이때 개혁의 어원인 ‘refomare’는 “새롭게 형성한다”는 뜻을 가진다. 이는 “개혁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한다”는 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한국교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전국 곳곳에서 500주년이라는 이름으로 기도회, 기념 세미나, 학술회가 열렸다. 그러나 종교개혁이란 담론에 교회개혁은 보이지 않는다.

교회는 지금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지난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에 따르면 기독교 인구는 약 천만이다. 전체 인구수의 20%를 차지한다. 고무적인 결과이다. 그러나 큰 규모에 비해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심각할 정도로 미비하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왜 그런가? 이유는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곧 교회 개혁이다. 개혁은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던 사람들로 인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영적 갈증과 욕구를 지니고 있었기에, 전통적인 가르침과 형식적인 예식을 거부하고 직접 하나님과 관계를 허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요구했다.

이들은 교회가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외친 것이다. 한국교회가 교회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선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작금의 현실을 냉철하게 통찰하여,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는 회개와 더불어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과 말씀 중심의 복음적 신앙으로 회귀해야 한다.

회개 없는 회복은 없다. 다시 교회들이 말씀 중심의 복음적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자성과 회개의 목소리를 목놓아 외쳐야 하지 않을까?

현재 한국교회를 향한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다. 처절하게 받아 내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왜 사회는 교회를 비난하는가?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손을 붙잡아 주었다. 언제나 그들 곁을 떠나지 않았고, 손과 발이 돼 주었다. 그 향수를 사회는 그리워하는 것이다. 교회는 절대로 교회의 빛과 소금이 아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마 5:13~14)이다. 예수님의 명령대로 세상을 잘 섬겨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른바 ‘에피고넨(epigonen)’의 시대를 맞고 있다. 에피고넨은 ‘자손’ ‘나중에 태어난 자’라는 뜻으로, 원래 그리스 7용사의 아들들을 가리킨다. BC 4세기 그리스를 지배하며 동방원정에 나섰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도 같은 이름으로 불렸으나 나중엔 뜻이 변해, 뛰어난 선구자를 모방하는 추종자를 가리키게 됐다.

현재 한국교회는 맨손으로 교회를 개척해 부흥을 이루고 신앙 형성에 영향을 끼친 ‘개척자’들이 일선에서 속속 물러나고 있다. 이제 전면적인 목회 리더십의 교체와 함께 새로운 목회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영웅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목회자들은 무거운 ‘감투’를 내려놓고 평신도가 중심이 되는 교회로 만들어야 한다. 종교개혁, 즉 교회개혁은 개혁자들의 정신을 계승한 인물, 프로테스탄트의 출현에 달려있다. 이 시대의 프로테스탄트가 누구인가? 바로 당신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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