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와 조사!
상태바
축사와 조사!
  • 운영자
  • 승인 2017.11.08 15: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수일 목사(흰돌교회)

유명목사들이 세상을 떠나 주님의 품에 안기는 장례절차가 간혹 TV를 통해서 생중계되거나 혹은 녹화된 영상을 후일에 시청해 보면 ‘조사’란 순서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천한 목사의 특별한 지인들이 조사순서를 맡아 고인의 넋을 추모하는데 주로 비통해 하는 모습들이다.

목사를 비롯한 주님의 사람들이 정한 때를 살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이는 애곡할 일인가, 아니면 부르심에 감사하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할 일인가?
오래 전 지역에서 신실하게 목회하던 목사가 은퇴를 얼마 앞 둔 시점에 세상을 떠나는 일이 발생했었다.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목회를 해 오던 터라 갑자기 발생한 그의 죽음은 모든 이들을 당황하게 했지만 교회와 온 성도들은 비교적 차분하게 장례절차를 수행해 나갔다.

문제는 발인식이 있는 날, 즉 천국환송예배라는 이름으로 드려진 마지막 예배에서 발생했다. 담임목사의 사모가 남편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통곡에 통곡을 연하다가 기어이 실신하게 된 것이다. “여보, 나를 두고 어디를 갑니까,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먼저 갑니까, 나 혼자는 못 살아요” 등등의 소리를 하며 땅을 치다 끝내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생긴 것이다. 당시 주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많은 교인과 목회자들은 사모의 아픔에 동감하면서도 매우 혼란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최근에도 잘 아는 목사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 주님의 품에 안긴 소식이 SNS에 올라왔었다. 수많은 댓글이 꼬리를 이었는데 그 내용은 한결같이 비통하다는 것뿐이었다. 많은 혼란이 왔다. 

도대체가 천국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우리가 그토록 주장하는 복음의 가치, 이를테면 ‘주님의 십자가를 통한 죄사함과 부활은 믿는 자들에겐 무익하고 무력한 것인가’ 하는 물음을 가지게 된다. 혹자는 말한다. 그래도 사람은 본능적인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죽음 앞에서 애통해 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고...

부분적으론 이해가 되나 성경을 목숨보다 귀히 여기고 십자가의 은총과 부활의 은총, 나아가 저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십자가의 은총과 부활의 소망을 견고히 붙들며 세상의 모든 환난과 유혹을 헤쳐 나온 하나님의 사람들에겐 마침내 열리는 천국이야말로 지상 최대의 사건이며 최고의 은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 즉 낙원에 이끌려 간자로서 그때의 상황을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간략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바울은 분명하게 말한다.“내가 죽은 것과 사는 것,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빌2:23). 바울의 고민은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바울의 고민과 소망은 살든지 죽든지 그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뿐이었다. 

바울이 믿는 복음이 우리의 복음이라면, 바울이 사랑하는 예수가 우리의 예수와 동일하다면 바울이 죽음 앞에 담대하듯 우리도 그러해야 하고 바울이 죽음을 앞에 두고 호령하듯 우리도 죽음을 호령하며 조롱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적어도 믿는 자들의 장례식장에서는, 아니 목사들의 장례식장에서만큼은 애통하는 조사보단 오직 믿음으로 살다가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한 믿음의 영웅들을 축하하고 축복하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축사도 아니고 조사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은 사탄이 비웃을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