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실 칼럼]네 이름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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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칼럼]네 이름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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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0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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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 27
▲ 에덴동산, 토마스 콜, 1828년, 캔버스에 유화.

*창세기1:4-10>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올 봄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어느 시리아 난민 가족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머리에 수건을 쓴 어머니는 온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 뒤흔들릴 정도로 울며 말했다.

“내 아들 죠지는 겨우 열여덟 살이에요 그리고 예수님을 믿었어요, 우리 가족 모두 예수님을 믿었어요. 그런데 IS가 마을을 습격해서 우리는 옆집에 숨었어요. 옆집 사람들은 이슬람교도들이지만 평소에도 우리 가족과 친하게 지냈어요. 옆집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 가족을 숨겨주었지요. 하지만 우리는 발각되었어요. IS는 아들에게 네 이름이 뭐냐고 물었어요. 아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 이슬람 이름을 버리고 죠지라는 이름으로 바꿨거든요. 우리 모두는 아들이 당연히 자기의 이슬람 이름을 말할 줄 알았어요. 일단은 목숨을 구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아들은 나에게 소리쳤어요. ‘엄마! 나는 내 이름으로 죽고 싶어요!’ 결국 아들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총살을 당했어요. 단 한 번, 단 한 번만 옛날 이름을 말했으면 살았을텐데… 그러나 나는 믿어요. 지금 내 아들, 죠지는 예수님 품에서 모든 고통과 눈물을 닦아내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그래도 보고 싶어요, 내 아들 죠지를…”

죠지의 엄마는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뒤섞인 울부짖음을 쏟아냈다.
우리는 시리아의 열여덟살 죠지처럼 새 이름을 갖고 있다. ‘크리스천’.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 어느 목사님은 자기 혈액형이 C형(크리스천 형)이라고까지 하신다. 그런데 그 새 이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며, 생명을 걸면서까지 지키려하는 결단이 있는가?

예전 사람들은 툭하면 이런 말을 했다 ‘가문에 먹칠을 하지 마라.’ ‘가문을 빛내는 사람이 되거라.’ 이것은 결국 조상의 이름에 누가 되는 삶을 살지 말고, 그 이름을 드높이는 길을 걸어가라는 뜻이다. 그래서 양반 가문 사람들은 무슨 이유이든 가문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일을 했거나, 그런 상황이 되면 주저없이 목숨을 끊기도 했다. 

기껏 사람 이름의 명예를 위해서도 언행을 삼가고, 목숨마저 가벼이 버리는데,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다스리고 있을까? 천주교인들은 마리아, 요셉, 도마, 요한, 베로니카 등등 열두 제자나 들어보지도 못한 서양 사람들의 이름을 붙여서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다고 그 이름들이 언제나 거룩하게 사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예전에 성공회의 한 교회에서 하는 야학교사를 했는데, 그 학교의 교사들은 자주 가는 순대국집에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며 이런 류의 말을 거리낌없이 나누었다. ‘어이, 파비안, 술 한잔 줘!’ ‘베드로, 오늘 기분도 좋은데 더 마시자.’ ‘마리아, 한 병만 더 마시고 갑시다.’ 그때마다 나는 매번 놀라곤 했다. 천주교인들이나 성공회인들의 생활양식은 그렇다치고, 기독교인이라는 우리들은 어떠한가? 정직하게 말하면 지금의 실상은 기가 막힐 정도로 아예 의식이 없는 사람이 더 많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새 이름을 부여받았지만 자랑스레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교회 안에서만 드러내는 이름이다. 주일예배가 끝나고 교회 밖을 나서는 순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스마트폰 속으로 사라지거나, 가방 속에 넣어버리거나, 텔레비전과 컴퓨터 뒤로 던져진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빛과 어둠을 나누신 것’ 그리고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신 것’ 이다. 
“나누시고, 명명하신 일”
우리는 어디서, 무엇에서 나뉘어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무슨 이름을 받았는가?

 

함께 기도

하나님, 독생자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새 이름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 이름이 온통 보혈로 적셔져 있는데도 어째서 우리는 눈물조차 잘 흘리지 않는지요? 우리의 무딜대로 무디어진 마음을 깨뜨려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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