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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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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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0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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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교황과 왕과의 분쟁(1)
로마교황 그레고리 7세는 우리가 잘 아는 ‘카노사의 굴욕’이란 사건을 생각나게 합니다. 1054년 신성로마제국이라 부르는 독일 왕위에 오른 하인리히 4세는 교황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힘이 강대해지자 자신의 궁정 신부를 대주교에 임명했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하인리히 4세를 동맹자로까지 여기고 있던 교황 그레고리 7세는 당황했고,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성직 임명권에 대한 협상에 응할 것을 황제에게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주교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황제는 교황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더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교황은 황제와 그를 따르던 주교들도 파문했을 뿐 아니라 왕을 폐위하는 조치까지 취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주교들이 방향을 급선회, 교황에게 고개를 숙였고 새 국왕을 선출하자는 의견까지 나왔습니다.
 
1076년 겨울. 교황 그레고리 7세는 아우스부르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를 출발하여 알프스를 넘고 있을 때 하인리히 4세가 이탈리아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군대를 가진 하인리히 4세가 무력으로 자신을 몰아내려고 오는 것이라 여긴 그레고리 7세는 순간 긴장했습니다. 교황의 본거지를 떠나 단출한 여행객이었던 그레고리 7세를 도와준 사람은 이탈리아 북부 카노사 성의 성주였던 백작부인 마틸데였습니다. 그녀는 교황의 오랜 친구였으며 그의 교회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카노사 성으로 들어간 그레고리 7세는 하인리히 4세가 황제로서가 아니라 자비를 구하는 고해자의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온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하인리히 4세는 개인 자격으로 부인을 대동하고 눈발이 흩날리는 성문 앞에서 맨발로 무릎을 꿇은 채 파문 철회를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교황이 파문을 거둬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앞날을 장담할 수가 없었던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이 만나줄 때까지 내복바람에 금식을 하며 3일을 버텼습니다. 하인리히 4세는 이날의 치욕을 훗날 반드시 갚겠다며 이를 갈았다고 합니다. 
 
사실 그 무렵 교황은 하인리히와의 전면전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강력한 황제 세력이 어떻게 나올지 노심초사하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하인리히 4세의 행동은 교황 입장에서 입에 떨어진 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레고리 7세는 하인리히 4세를 만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인리히 4세에 대해 마음이 돌아선 그를 설득한 것은 성주 마틸데 백작부인과 클루니 수도원의 대수도원장 후고였습니다. 
 
추위에 떨며 자비를 구하는 신자를 교황이 내팽개쳤다는 오명을 덮어쓸 수 없었던 그레고리 7세는 하는 수 없이 성문을 열게 하고 하인리히 4세를 만났습니다. 하인리히 4세는 무릎을 꿇고 교황에게 용서를 구했으며 그레고리 7세는 자신이 집전하는 미사에 하인리히 4세를 참석시킴으로써 파문을 거둬들였으니 1077년 1월 28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인리히 4세는 진심으로 교황 앞에 머리 숙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얼마 후 다시 교황에게 머리 숙이기를 거부했고, 이에 격분한 교황은 1080년 그를 다시 파문하고 폐위까지 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미 독일의 주교들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얻고 있었던 하인리히 4세는 3년 전의 황제가 아니었습니다. 하인리히 4세와 독일 주교들은 오히려 그레고리 7세를 폐위하고 대신 클레멘스 3세를 교황으로 옹립했으니 그가 바로 대립교황입니다.
 
그러나 하인리히 4세의 임무는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교황청이 자리 잡고 있는 로마로 진군해 도시를 함락시켰습니다. 당황한 그레고리 7세는 이탈리아 남부를 통치하던 노르만 출신 공작 기스카르에게 구조를 요청했고, 기회를 잡은 기스카르는 로마로 진격해 교황을 구하고 동시에 로마 시가 보유하고 있던 재물도 함께 가져갔습니다. 당연히 시민들은 교황의 처사에 분개했고, 교황은 이번엔 시민들의 힘에 밀려 이탈리아 남부 살레르노로 피신했다가 이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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