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뜻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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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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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0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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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과 개혁주의생명신학 연합학술대회 및 부흥사경회 개회설교
▲ 개혁주의생명신학 주창자인 백석학원 설립자 장종현 목사는 지난 2003년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한국교회 개혁의 출발점이 참된 신학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날 장 목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뜻을 내려놓는 순종과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백석대학교 총장 장 종 현 목사 

로마서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누가복음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종교개혁은 중세 가톨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고, 교황의 권위와 교회의 전통을 성경 위에 두는 잘못을 범하였을 때, 성령께서 종교개혁자들을 통하여 교회를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신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한 가르침으로, 개혁주의신학(Reformed Theology)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개혁주의신학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학문과 교리는 붙들면서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소홀히 하므로 복음의 생명력을 약화시켰습니다. 개혁된 교회가 성경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신학을 기준으로 하면서 다시 교회는 생명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혁주의신학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회복하도록 ‘개혁주의생명신학’(Reformed Life Theology)을 주창하게 된 것입니다.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말씀’ 입니다. 신학을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신학은 학문이지만, 신학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믿는 사람에게는 계시이며, 복음이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인 것입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은 새로운 신학이 아닙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은 자신과 교회와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릇된 것은 바로 잡고 올바른 것은 계승하는 개혁주의신학을 실천하기 위한 운동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비난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가르침이 성경에 있고, 신앙의 모범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셨는데도 한국교회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한국교회가 어떻게 하면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개혁 될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져야 개혁할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은 개혁주의신학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회복하기 위해 종교개혁자들의 ‘5대 솔라’를 계승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5대 솔라’는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오직 성경’은 성경이 인간의 구원과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유일하고 완전한 기준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므로, 선포되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우리들의 삶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오직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오직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생의 은혜는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는 뜻입니다. 본문 롬 1: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삶입니다. 믿음은 문자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흔적을 보이는 사람이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믿음은 순종을 통하여 열매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오직 은혜’는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여줍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오직 하나님께서 완성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최고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용서와 화해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은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 가운데 홀로 영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자들이 선포했던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그렇습니다. ‘5대 솔라’는 참으로 좋은 종교개혁의 핵심교리입니다. 중세 가톨릭교회에 맞서 성경을 기준으로 개혁한 개신교회는 어떤 교단이든 이 교리와 신학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의 계승자인 우리들은 지금 개혁주의신학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학적으로 교리를 체계화시키고, 학문적으로는 대단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성경보다 신학을 앞세우는 잘못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교회의 전통을 앞세웠던 중세교회처럼 성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신학을 앞세우는 잘못을 그대로 범했기 때문입니다.

개혁주의신학이 아무리 좋다 해도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면 사람을 살리는 신학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신학교가 개혁주의신학을 따르면서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으므로 실천하지 못하여 영적인 생명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혁주의신학을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개혁은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개혁은 우리 머리나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실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자만이 개혁주의신학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일 때 개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주의 종들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여 자기 자신은 물론 섬기시는 교회를 개혁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야 개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살 수 있습니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을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범죄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과 저주를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받아야 할 율법의 저주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율법의 저주를 받기 싫어하셨습니다. 마 26:39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피하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순종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신 것입니다. 그 치욕적인 수치를 당하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신지 사흘 만에 사망권세를 깨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름으로써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강단에서는 윤리적 교훈만 강조하거나 기복신앙에만 빠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신학자들 중에도 십자가와 부활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순종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오늘 본문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자랑한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자랑이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복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예수님의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500년 전에 일어난 종교개혁도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이 십자가 복음을 강조함으로써 죽어가던 교회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를 비워두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따라 죽어야 사는 종교입니다. 진정으로 부활을 믿는 사람은 주님 때문에 희생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어떤 고난이 와도 말없이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순종의 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지 않으면 영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실 때, 영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문제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이루신 예수님의 순종을 제대로 선포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목회자의 설교가 학문과 지식으로 변질되면 복음이 올바로 전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할 때 영적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부터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온전히 믿고, 성도들에게 바르게 선포함으로써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새롭게 하는 영적 개혁에 앞장서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성령 충만할 때 개혁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눅 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리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자기를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성령님의 지배를 받을 때 가능합니다. 성령님의 지배를 온전히 받는 삶, 그것이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하나님의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은 자라야 하나님의 말씀의 증인이 되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개혁은 절대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때만 자신을 개혁할 수 있고, 한국교회를 개혁할 수 있습니다. 슥 4:6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개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성령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행 8: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라고 말씀하시고, 행 8: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 가운데 여전히 역사하십니다. 성령이 단회적이니, 연속적이니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성경대로 믿고 기도하면 됩니다. 

렘 33:3에서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멸망해가는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될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멸망하고 있는 나라가 어떻게 회복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길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 한국교회가 개혁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분열입니다. 분열이 죄인 것을 알면서도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학과 교리의 차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욕심과 명예와 교권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개혁주의를 표방하고 정통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먼저 개혁하여 서로 용서하고 하나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서로를 비방하며 남의 탓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우리 총회가 신앙고백으로 채택한 개혁주의생명신학 선언 중 ‘오직 은혜’의 핵심은 ‘용서와 화해의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목회자, 신학자, 신학생 여러분! 
용서하고 화목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 힘으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합니다. 목회자가 먼저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개혁될 수 있고, 영적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자가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목회자는 항상 기도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명력 있는 목회자를 길러내야 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신학자들 입니다. 신학자들이 무릎 꿇고 기도해야 생명력 있는 목회자를 길러낼 수 있습니다. 신학자들이 성령 충만하여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말씀이라는 진리를 믿고 가르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도 여전히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생명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성경을 통하여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신학교에서부터 생명력 있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적 지도자들을 길러낼 수 있고, 그렇게 길러진 영적 지도자들이 교회를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제2의 종교개혁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개혁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의 힘과 지식으로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우리 자신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개혁이 가능합니다. 목회자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고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학자, 목회자, 신학생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주의 종들부터 성령충만함을 받아 개혁주의생명신학 7대 실천운동인 신앙운동, 신학회복운동, 회개용서운동, 영적생명운동, 하나님나라운동, 나눔운동, 기도성령운동을 실천하여,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새롭게 하는 제2의 종교개혁이 한국교회에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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