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이 자랑하는 국보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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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이 자랑하는 국보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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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2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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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목사의 요르단 성지순례(6) - 페트라(상)

페트라는 구약시대 에돔(에서의 후손들) 족속이 살았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고,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훈련을 받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척박한 지역으로 높고 가파른 암벽들이 어두운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외부 접근이 어려워 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한 곳이었다. 해발 950미터 고원에 위치한 페트라는 사해와 아카바만 중간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시가지 입구는 세 개의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페트라는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19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황량한 사막지대에 산들이 높이 솟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마치 병풍산을 걸으면서 둘러보는 느낌을 가지기도 했다. 바위를 반쯤 깎아 만든 건물들이 좁은 통로와 수많은 협곡이 있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표고 950m의 산 속에서 바싹 말라버린 강을 따라 앞으로 나가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붉은빛을 띤 바위 표면에 건설되어 있는 고대 도시 페트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시야에 들어왔다.

페트라는 요르단이 세계에 자랑하는 국보 1호의 유적지이다. 우리는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병풍 같은 바위 틈새의 좁은 골짜기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한참 가다보니 갑자기 웅대한 건물이 정면에 나타났다. 바로 페트라 유적지이다. 페트라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바위’에서 유래한 것이다.

남요르단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페트라를 만든 사람들은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아인이었다. 우리는 거대한 신전이나 무덤으로 여겨지는 건물들과 야외극장과 목욕탕 등을 보면서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암벽을 파서 만들어진 건물들과 좁은 통로를 따라가면서 고대 수로가 벽면을 따라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나바테아인들의 지혜와 기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제적 상거래가 활발한 이곳에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성경 기록(고후11:32)을 유추하며 또 한 번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느낄 수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페트라는 교통의 요지였던 관계로 언제나 외부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외적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거대한 암반 속에 주거지를 건설했던 것이다.

나바테아인들은 와디 무사(모세의 강)라 불리는 강, 즉 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건조한 계곡을 따라 시가지와 무덤, 신전 등을 건설했다. 그들은 수준 높은 건축 기술로 명성이 높았는데, 우리가 보기에도 그들이 만든 수로와 돌을 쌓아서 만든 저수조 등에서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적 중에는 로마식 파사드로 지어진 카즈네 신전도 있었다. 흔히 ‘파라오의 보물창고’라고 불리기도 하는 유명한 신전이 그것이었다.

이것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에도 등장했을 만큼 환상적인 건축미를 자랑한다. 파라오의 보물창고라는 이름은 인근 유목민들의 전승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하고 있다.

유목민들은 누가 페트라를 만들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단지 추측만으로 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도 카즈네 신전을 누가 만들었는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파라오의 보물창고’라는 명칭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카즈네 신전을 비롯한 페트라의 건축물들은 헬레니즘과 로마 문명의 토대 위에, 이집트와 아시리아,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은 페트라가 국제적인 무역 도시로서 커다란 번영을 누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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