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식 회복이 목회자 윤리 회복 첫걸음”
상태바
“소명의식 회복이 목회자 윤리 회복 첫걸음”
  • 이현주·한현구 기자
  • 승인 2017.10.25 16: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교회 개혁과제 ⑥ 목회자의 소명과 윤리


소명잃은 목회자가 유혹에 무너진다
16세기 로마가톨릭교회가 타락한 중심에는 성직의 타락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겨야 할 성직 자리가 권력의 상징이 됐다.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돈이 오갔고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는 중보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친다는 소명의식은 온데간데없이 성직은 ‘특권’으로 변질됐다. 

물론 모든 부르심은 하나님 앞에 동등하다. 모든 은사는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함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다. 목회자만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을 알고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말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목회자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맡은 직분이라는 점에서 독특성을 지닌다. 말씀 선포와 양육은 교회 형성의 중심축이다. 이를 위해 목회자는 신앙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며 하나님 앞에 개인적인 부르심, 즉 소명의 과정을 거친다. 

500년 전 부패한 로마가톨릭의 부패에 저항한 종교개혁은 신학자이자 성직자였던 루터로부터 시작됐다. 이에 비춰볼 때 성직자들의 확고한 소명의식은 교회 개혁의 전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소명의식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소명을 받고 신학의 길에 들어선 신학생들이 개척을 고민하고, 물질적 안정이 보장된 부목사 자리를 편식하면서 목회자로 출발하는 것부터가 소명의식의 약화다. 더 낮은 곳에서 섬기겠다는 각오는 사라진지 오래다. 소명보다 ‘조건’을 찾아 자리를 옮기는 일이 최근 한국교회 안에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 대형교회의 담임목사 청빙과 무산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지방 교회에서 안정되게 목회를 하던 위임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했기 때문이다.

노회로부터 위임을 받은 위임목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은퇴까지 그 교회에 속한다. 그래서 위임목사를 ‘교회와 결혼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위임목사가 다른 교회로 청빙받고 떠나게 되면 교인들이 받는 상처 또한 상당하다.

소형교회 목사가 중형교회로, 중형교회 목사가 대형교회로 자리를 옮기는 목회지 이동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 높은 권력과 물질을 위해 성직을 사고팔았던 중세교회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를 바라보는 성도들은 “우리 목사님이 지위와 명예, 돈을 찾아 이동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총신대 이상원 교수는 목회자의 대형교회 이동 이면에 성취감을 맛보고자 하는 유혹이 숨어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목회의 경우 다른 직업과 달리 사역 결과 평가가 명료하지 않다. 그래서 청중들의 숫자라는 가시적인 지표로 목회를 평가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복음의 씨를 뿌릴 기회가 늘어났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고 지적했다.

목회자의 개인주의 경향 또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목회자가 개인주의에 빠지면 교회 공동체를 연합체가 아닌 경쟁적 집합체로 파악한다. 교회에서 이룬 성과들을 곧 목회자 개인의 성취로 묘사하기 시작한다.

이 교수는 “개인주의의 영향을 받은 목회자는 ‘이 교회가 나의 섬김을 필요로 하는가’하는 소명의식 보다 ‘이 교회가 나를 부상시켜 주고 더 많은 사례비를 보장해 주는가’를 생각한다. 높은 사례비, 권력이 뒤따르는 높은 지위, 부자나 영향력있는 교인과 연합하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비판했다.

목사도 인간, 유혹이기는 훈련해야
소명의식은 곧 목회자의 윤리의식과도 직결된다. 소명을 잃은 목회자가 성경적 윤리의식을 가질리 만무하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부패하고 타락했던 종교개혁 전야와 닮아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교회 지도자 자리에 돈이 오가는 황금만능주의, 목회자에게 권력이 집중된 교권주의가 만연하다. 그 중에서도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은 쉽게 꺼내기 힘든 주제에 속한다.

특히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작은 사건도 인터넷을 타고 삽시간에 퍼져 나가면서 한 사람인 ‘인간 목회자’의 잘못은 한국교회 전체의 잘못으로 매도되기 십상이다. 그중에서도 성윤리 문제는 더 큰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는 면에서 성직자에게 고도의 청렴과 순결이 요청된다.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박문수 박사는 ‘윤리학적 관점에서 본 목회자 성윤리 문제’를 진단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헌신이 성적 비행을 막는 근본적인 방어막”이라고 강조하면서 성직자들이 음란물을 보거나 하룻밤 즐거움을 추구하거나,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한다면 하나님의 참된 성품을 위반하는 죄가 틀림이 없다고 지적했다.

성윤리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간 매스컴을 타고 확산된 목회자의 자녀 학대와 살인, 대규모 사기사건, 지하철 몰래카메라, 모 교단 총무의 살인미수 사건 등은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들이 일으킨 일이지만 한국교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요인이 됐다.

박문수 박사는 “목회자의 탈선이 낳은 결과는 목회자 자신과 상대 피해자뿐 아니라 교회와 사회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기독교윤리학자인 신원하 교수 역시 “교회의 복음사역은 생각보다 큰 스캔들, 즉 걸림돌에 막히거나 실족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기독교에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일을 통해 더욱 기독교를 폄하하고 비판할 수 있는 큰 호재로 삼아 떠들 것”이라며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은 다른 어떤 것보다 선교를 막는 큰 장애물임을 강조한 바 있다.

성직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다. 부름받은 자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서약은 반드시 지켜야할 약속이다. 그러나 목사도 유혹에 빠지기 쉬운 ‘인간’이다. 모든 성직자가 100% 완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소명을 점검하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상시적 회개가 필요하다.

박문수 박사는 “범죄에 연루되지 않은 목회자라 할지라도 범죄의 가능성이 항상 자기 주변에 있으므로 경성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성령충만의 삶을 유지함으로 하나님이 부르신 성직에 대한 진지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