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주 가정예배
상태바
10월 마지막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17.10.25 16: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요일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시편 18:1~6
찬송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경험된 사랑의 고백입니다. 다윗이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힘이 되신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4~6절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다윗은 살아 있으나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고,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옆을 봐도 길이 없었습니다. 사울의 무장된 군대가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을 합니다.
다윗은 어려움 앞에서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이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반석이 되어주시고 요새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피할 바위, 나를 건지시는 자,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이라고 고백하며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한다는 진한 고백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가 있습니까? 고난 중에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기도와 간구로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나의 힘이 되시고 의지가 되시는 하나님! 크고 작은 문제 앞에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박경배 목사(송촌장로교회)

화요일

광야!

신명기 8:1~3
찬송 430장


광야의 길! 말로 다할 수 없이 끔찍하고 힘든 길입니다. 그 길을 하루 이틀도 아닌 40년이나 걸었습니다. 애굽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기적을 볼 때는 정말 시원하고 통쾌했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고생했던 모든 체증이 한 순간에 날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로 두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곳은 강력한 훈련의 장입니다. 광야에서는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내 힘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당장 죽습니다’ 하고 겸손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 오직 하나님만 구합니다.
아울러 그들을 지키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그들은 채찍 앞에서 복종했습니다. 적당히 먹고 입을 것만 주면 세상이 시키는 대로 아무런 의식 없이 살았습니다. 그것이 선한지 악한지 분별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방식은 애굽의 방식과 분명 다릅니다. 선의 기준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감격하고, 공급하심에 감사하고, 보호에 기뻐하며, 인도하심을 찬송하는 삶을 살도록 광야를 주셨습니다.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구원의 감사와 감격을 누립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가 걷는 길이 험하고 거칠어도 오직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믿음으로 걷게 하소서!

고혁성 목사(염광교회)

수요일

자유를 주는 예수님

요한복음 8:31~36
찬송 284장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물질도 필요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자유입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진리를 알면 자유 얻음을 선언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는 예수님 자체를 말합니다(요 14:6). 예수님께서 자신을 진리라고 하신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은 영원히 사는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영원히 사는 생명을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유를 준다고 했을 때에 유대인들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유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영적으로는 마귀에게 붙잡혀 사는 죄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했을 때에 그 자유를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죽음에서 자유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죽었고, 그의 자손들도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선택한 12제자들도 죽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의 종으로 살았기 때문에 다 죽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종이 된 자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하여 왔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는 단순한 자유가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자유입니다. 죄의 종에서 해방과 자유를 주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삶에 자유와 구원을 줍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나와 자녀가 주님이 주시는 자유를 알고 자유의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규환 목사(목양교회)

목요일

길 가운데서

마가복음 9:33~34
찬송 491장


인생은 길 위에 있습니다. 산다는 것이 날마다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길을 제대로 가려면 방향을 잘 잡아야 합니다. 이정표나 선도자(先導者)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스승의 뒤를 따르는 것이 제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동네와 마을, 그리고 도시들을 다녔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일러 “나는 길이다”(요14:6)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도리(道理)는 길 위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 위에서 가르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듣고 보고 배웠습니다.
하루는 가버나움의 집에 있을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헬라어 ‘디에로기제스데’가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토론한 것으로 표현했지만, 다른 번역서들은 다툰 것으로 번역했습니다.
제자들은 “우리 중에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말싸움을 벌였던 것입니다. ‘길에서’(엔 테 호도: 길 가운데)라는 예수님의 물음은, 의미심장(意味深長)한 것입니다. 그 길은 예루살렘을 향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즉, 수난과 죽음을 가리키는 십자가의 길을 뜻합니다.
주님은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막8:34절)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에는 자리나 서열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아무런 말도 못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당신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잘 감당케 하시고, 온유와 겸손의 주님을 배우게 하소서!

최두길 목사(아름다운미션교회)

금요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창세기 2:15~17
찬송 540장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심은 아담을 사랑해서였습니다. 행복한 존재로 살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담과 하와가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였습니다(창3:4~5).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지만(출3:14) 피조물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시100:3)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 받아야만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15:5) 했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만 합니다.
또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간섭을 받아야만 안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선악을 정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자 눈이 밝아지면서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선악의 기준을 파기하고 새롭게 정했습니다.
아담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선악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뱀에게 유혹을 받은 후에는 선악의 나무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말씀의 간섭을 받으십시오. 그리하여 생명과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간섭과 도움을 받으며 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한용준 목사(의정부성만교회)

토요일

행복한 감사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찬송 406장


본문은 우리를 귀찮게 하거나 속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복 주시기 위하고 풍성한 삶을 위한 요청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예수 때문에 살해 위협과 사회적 시련 가운데 인내하던 교회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위로 메시지였습니다. “항상 기뻐하라!”(16절) 눈에 보이는 여건으로는 기뻐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기쁨으로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주신 두 번째 말씀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17절)입니다.
그 뜻은 기도를 중단하지 말라, 삶을 기도 체질로 바꾸라, 기도와 함께 살라,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나도 기뻐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나도 싫어하며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내 힘이면 족하지 하나님이 내겐 필요 없다고 하는 교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안 도와줘도 되는 성도로 사는 것이 최악의 죄악이요, 어리석은 짓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18절 a).  ‘범사에’라는 말은 ‘어떤 형편에서든지, 모든 일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라는 뜻입니다.
그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좋은 일을 알아보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어려운 형편, 힘든 환경, 좋지 못한 일을 만나도 감사하십시오. 마지막으로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감사하십시오.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참 기쁨으로 기뻐합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강동열 목사(순천화평교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