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치유는 신비주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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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는 신비주의가 아니다
  • 최귀석 목사
  • 승인 2017.10.1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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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귀석 목사의 ‘성경적 내적 치유’(25)

하나님께서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라”고 말씀하셨음에도 우리 선조들의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은 뒷전이고, 범사가 잘 되기만을 구하는 믿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한대로 질병을 낫게 해주시고 물질을 부어주시지만, 결국 병은 재발하고 물질도 없어지게 되는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당시 우리나라는 대내외적으로 혼란한 국면에 처해 있었다. 오늘 먹을 양식을 걱정하며 살던 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선진들은 눈에 보이는 3차원적인 것(물질, 명예, 의식주)으로 믿음의 징표를 삼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영혼이 잘 되는 것보다 범사가 형통하게 되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신앙생활을 했다.

유난히 수난이 많았던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생각해보자. 당시에는 “예수 믿으면 영혼이 잘 되고,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됩니다”라는 말은 설득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범사가 형통하게 되고 영적으로도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라는 말이 전도에는 훨씬 더 이로웠다는 말이다. 영혼보다는 육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이 시급했기에 신앙생활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고 할 수도 있다. 시대적 상황과 개인의 무지함에서 비롯된 결과이기 때문에 반박의 여지도 없지만, 잘못된 믿음이라고 믿음의 선배들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 대부분이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고 살아간다. 이제는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범사가 잘 되는 것보다 먼저라는 것을 강조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다. 3차원적인 것들은 이미 필요 이상으로 누리고 있으며, 물질만능주의라고 할 만큼 물질이 범람하고 있는 3차원 속에서 그 물질적인 것이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영적인 갈급함과 공허함은 점점 더 커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먹고 살만해진 지금은 눈에 보이는 3차원적인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4차원의 세계(영혼, 심리, 마음, 내면, 정신 등의 영적인 영역)를 채워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면 영혼이 잘 되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속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것이다. 반면 신경질, 짜증, 미움, 원망, 분노, 화가 나면 내 영혼의 주인이 예수님에게서 사탄으로 바뀌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면, 생각, 말, 행동이 변하고 환경이 열리며 생활이 달라지기 때문에 범사가 잘 될 수밖에 없다. 미움과 분노는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평안으로 나의 마음을 지키고, 내 영혼이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거룩’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란

부정적인 것들이 전혀 없고, 점, 흠, 티가 없으신 하나님이다. 반면에 인간은 죄성으로 땅을 딛고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천사인 양 거룩한 척을 하며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척’ 하며 살지 말라고 깨닫게 하시는 일들이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담(죄)을 무너뜨리고 하나님과 1:1의 깊은 교제를 나누며 순간순간 변하는 감정으로부터 내 마음(영혼)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최귀석 목사 / (사)한국가정치유상담연구원장 / 행복으로가는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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