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실 칼럼] 마음대로 하나님 앞에 나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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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칼럼] 마음대로 하나님 앞에 나온다는 것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7.09.2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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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23

*출애굽기 19장에서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12절). 그런 자에게는 손을 대지 말고 돌로 쳐죽이거나 화살로 쏘아 죽여야 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고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13절).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22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경계를 넘어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24절).

▲ 시내산의 모세, 장 레옹 제롬, 1895~1900년, 캔버스에 유화.

“2017년이 이제 4개월 밖에 안 남았어. 그래서 새로운 목표를 정했어. 2017년의 후반부를 잘 살아서 그동안 제대로 살지 못한 8개월의 시간에 대해 회개하는 마음으로!” 

지난 토요일, 생일을 맞은 대학생 조카가 케이크를 먹으며 말했다. 
“무슨 목표?”
내가 물었다.
“코람 데오 정신!”

그 바람에 우리들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coram Deo’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중 가장 열띤 이야기 줄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코람 데오의 자세(정신)이냐는 것이었다.

고등학생부터 할머니(나에게는 엄마)까지 모두 일곱 사람은 저마다 한마디씩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코람 데오의 진정한 정신은 꾸준함이니까 날마다, 순간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크고 작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물어보는,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빠처럼 생각하여 늘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예배를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십일조를 철저히 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 두 눈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등등 매우 관념적이기도 하고, 아주 단편적인 것 같기도 한 의견들이 나왔다. 

그러나 지식 짧은 우리들은 그런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이상한  느낌을 공유하며 헤어졌다.   
그 날, 밤 나는 기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생각 나 얼른 일어났다. 몇 달 전 읽은 출애굽기의 한 장면이 생각나서였다. 19장을 펼쳤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지 3달 째 되던 때,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모세와 대화하던 하나님은 이런 말로 맺음을 하신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고, 이를 들은 백성들은 일제히 순종을 맹세한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이 빽빽한 구름 가운데에서 임재하시어 말씀하신다. 자욱한 연기와 불과 산의 흔들림과 나팔소리에 백성들은 두려움에 떤다.

하나님은 엄중히 말씀(9절부터 24절까지) 하신다. 그 말씀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에는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오면 죽을까 하노라, 내가 칠까 하노라 하는 경고(표현이)가 다섯 번이나 나온다. 

19장 말씀을 읽은 나는 절로 아… 하며 탄성을 내뱉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어떠한가. 내 조카의 경우를 보면 2017년의 8개월을 제대로 못 살았기에 9월부터는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 서겠다는 말이 아닌가! 만약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네가 죽기로 작정했구나!’하며 한탄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라는 말을 너무도 가볍게, 자주, 심지어는 아무 두려움없이 한다. 도대체 이런 담대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는 말씀을 진정으로, 진정으로 믿어서일까?

아니면 말 그대로 하나님을 집에 있는 아빠처럼 친근하게 여겨서일까? 아니면, 존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그 빛남과 영광에 대해 완벽히 무지해서 아무런 겁 없이 하나님 앞에 선다고 큰소리 뻥뻥 치는 건 아닌가?  

함께 기도>>>
하나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해서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는 말씀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제 기분과 상황에 따라 너무도 무례하게 하나님 앞을 들고 나는 게 아닌지요!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서는 만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게 도와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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